너무 힘들지? 인생 뭐있나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어
죽지못해 사는 것 같더라도
오늘 하루만 딱 하루만
억지로라도 즐겁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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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너무 힘들지? 힘들어 죽겠지? 모든 게 귀찮고, 무기력하고, 마음 붙이고 싶은 거 하나 없고, 어느 누구와도 말 한마디 섞기조차 싫고…. 그 마음 잘 알아. 누구보다도 잘 알지. 어떻게 아냐고? 얘기 하나 해 줄게. 잘 들어봐.
나는 지난날 서울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폐암 몇 기냐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받았어. 모든 검사 결과를 놓고 여섯 분의 의사가 협진과 회의를 한 끝에 치료도 수술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한 갈피 한 갈피 내 지난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어. 모든 것이 허망하고 허무하기만 하더라고. 그런 어느 날 대구에 있는 작은 병원에 들렀는데 그곳 의사들이 대뜸 치료를 해보겠다고 하는 거야. 나를 포기한 의사들도 있는 반면 치료를 해보겠다는 의사들도 있구나 하는 감동에 그 병원 의사 세 분의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
그런데 나는 그 전에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어. 내가 내 인생을 잘못 산 결과로 담담히 받아들였을 뿐 젊은 나이에 죽게 된 걸 그다지 억울해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살려달라고, 좀 더 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지도 않았어. 꿈같은, 기적 같은 거창한 희망 따윈 더더욱 바라지도 않았어. 밤에 잘 시간이 되면 생각했어. 내일도 살아 있게 된다면 내일 하루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게 내가 바란 단 하나의 희망이었어. 이 세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시간, 천금보다 귀한 하루하루를 무조건 즐겁게 살고 싶었어. 그 좁고 갇힌 병원 병실에서 즐거울 일이 뭐 있을까마는 나는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언제나 밝고 즐거운 사람이었어.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이 나더러 시한부가 아니라 '가라환자' 라고 얘기할 정도였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비통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라도 즐겁게 산 하루, 또 하루, 또 하루….
이제 수술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되었어. 수술 중에 사망할 확률도 높고 수술 후에 깨어난다고 하더라도 길어야 일 년 정도 살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 그런 수술을 왜 해야 하느냐는 나의 반문에 의사는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을 할 뿐이었어. 5시간을 예정했던 수술은 수혈까지 하며 8시간도 넘게 걸렸어. 다행히 수술 중에 죽지 않고 살았어. 중환자실에서도 두어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의사의 응급처치로 잘 넘겼어. 열흘이 지나 병실로 이송되었어. 그런데 그동안 한 병실을 쓰던 사람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었어. 그들은 살아 있을 때도 하나같이 절망과 체념, 죽음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나. 그걸 사색이라고 하지. 생불여사, 생존하고 있을 때도 죽은 것만 못지않았다는 말이야. 그들의 자리에는 또 다른 환자들로 채워졌어. 새 환자들의 얼굴도 그 전 환자들의 어두웠던 안색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어.
하지만 난 달랐어. 피골만 남은 산송장 꼴을 하고서도 며칠 있으면 꼭 퇴원할 사람처럼, 무슨 설레고 신나는 일이라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매일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보냈어. 나의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그 결과 석 달짜리 시한부 인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지금까지 7년째 살게 되었어. 그 희망 같지도 않은, 그 별것 아닌, 그저 즐거운 하루가 쌓여서 기적을 일으킨 거지.
인생 뭐 있나. 그래 뭐 없어. 그러니 자꾸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어. 눈 딱 감고 오늘만 살아내면 되는 거야. 간곡히 부탁할게. 죽지 못해 사는 것 같더라도 오늘 하루만, 딱 하루만 억지로라도 즐겁게 살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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