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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2022-12-30

[금요광장]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이재동 변호사

파헬벨의 유명한 '캐논 변주곡'의 가락을 딴 인기 록 밴드 Maroon5의 '추억들(Memories)'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들으면 참 좋은 노래다.

"아픔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지/ 모든 것들이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누군가 너의 이름을 말하면 내 마음은 12월처럼 느껴져."

환갑을 지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또 한 해가 무감하게 저무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에 관하여 어떤 심리학자는 개인이 살아온 시간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열 살 소년에게 지난 1년은 인생의 십 분의 일이나 되지만 나에게 지난 1년은 육십 분의 일도 채 되지 않으니 우리에게 계속 주어지는 단위 시간에 대한 충실도나 만족도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차츰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억을 떠올리거나 꿈을 꿀 때에 등장하는 이들 중에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늘 같은 시간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어딘가 몸이 불편해지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불편함과 함께 나머지 시간을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재에 쌓인 책들이나 음반들을 둘러보노라면 내가 다시 뒤적이거나 감상할 기회가 없을 작품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깨달음에 문득 슬퍼진다.

그렇지만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경험은 일회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은 늘 반복되지만, 꼭 같은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나날의 무수한 반복 속에 드러나는 그 작은 차이들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옛날 어떤 미국 영화에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노인들이 사는 양로원에 어떤 천사가 나타나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수십 명의 노인들 중 단 한 명만이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양로원에서의 초라한 현재에 남기로 하였다. 당시로서는 그 결론이 이해가 되지 않는 충격으로 느껴졌지만 한참의 시간을 더 산 지금으로서는 공감이 된다. 노년은 추억으로 살고 그 추억은 첫사랑과 같은 환희일 수도 부모나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픔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

남산동 성모당 성직자 묘역 입구에는 라틴어로 'HODIE MIHI, CRAS TIBI'라고 적혀 있는데,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라고 한다. 카프카는 인생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무엇이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 지옥일 것이다.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결코 말하지 않겠다는 내기를 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사건과 사람들에게 집착하고 보내려 하지 않는 것은 악마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다는 뜻인가.

시간은 불가역(不可逆)적으로 흘러가고,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노년의 12월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다시 못 올 것에 대한 추억이 더 많은 시절이다. 괴테가 말하였듯이, 젊은이는 사람들 속에서 강해지고 노인은 고독 속에서 강해진다. 고요히 지나간 시간을 성찰하고 끝의 시점에서 미리 돌아보는 가정(假定)적 반성을 통하여 욕망과 미련을 조절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시간으로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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