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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주말&여행]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왕도 신선도 실연도 떠나고…적요와 평안의 바다가 남았구나

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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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근처에서 보이는 남해 바다 미조항 방면. 맑은 날에는 멀리 여수 돌산읍과 금오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남해 바다는 그윽했다. 아름다운 적요와 깊은 평안의 바다였다. 남해 금산에서 새해의 바다를 보다니, 복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 자암(自庵) 김구(金絿)는 남해를 '한 점 신선의 섬(一點仙島)'이라 불렀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왕이 되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이후에는 나라의 부흥과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비석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 '남해 금산'은 시인 이성복의 단 일곱 줄 시로 실연시(失戀詩)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로서는 왕도 신선도 실연도 일없이, 그저 무한한 향유에도 평온하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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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보리암과 해수관음. 보리암은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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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한 곳에 세운 비각인 선은전. 내부에는 '남해금산영웅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가 모셔져 있다.

◆금산 보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완만한 산길로 20여 분 만에 보리암에 닿는다. 한껏 추웠다가 반짝 온화해진 날의 오후, 스름스름 짧은 걸음에도 등줄기가 후끈하다. 보리암은 양양의 낙산사, 여수 향일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으로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게다가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라 특히 연말과 연초에 엄청난 인파로 붐빈다. 보리암은 금산의 깎아지른 만장대 벼랑 끝에 올라서서 남쪽을 향해 있다. 벼랑에 오르니 소원을 잊는다. 해수관음보살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다. 조용한 북적임 속에서 하 많은 소원이 열기로 피어오른다.

보리암은 원래 신라 신문왕 3년인 683년에 원효대사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왕이 된 이성계가 보은의 의미로 '금(錦)' 자를 산 이름으로 하사하여 금산이 되었고, 1660년에 현종이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菩提庵)이라 개칭했다. 이성계가 기도한 곳에는 '남해금산영웅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가 모셔져 있다. 1903년에 문신 윤정구가 세운 것이라 한다. 편액은 '선은전(璿恩殿)', 즉 '하늘의 은덕을 입은 곳'이라는 뜻이다. 선은전 앞 좁은 땅에서 보는 세상은 넓었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리는 동안 밥은 누가 했을까.


이성계, 이곳서 백일기도 뒤 왕 즉위
조선초엔 '一點仙島'라 일컬어지고
이성복 詩로 실연시 대명사 되기도

금산 벼랑 끝 남쪽 향해 선 보리암
소원 비는 사람들로 조용한 북적임

사랑 이뤄준다는 상사바위서 보면
다도해 풍광 속 눈닿는 곳 모두 비경



◆눈 닿는 모든 곳이 비경

해수관음상을 지나 산길로 들자 쌍홍문(雙虹門)이 나타난다. 해골 같다. 아무리 보아도 해골 같은데 원효대사는 쌍무지개를 닮았다고 쌍홍문이라고 했다. 해골의 눈 속은 서늘하다. 굴 안쪽 벽에는 세 개의 구멍이 나란히 있는데 돌멩이를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쌍홍문 일대를 시작으로 정상으로 오를수록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산에는 돌이 많다. 이름 가진 비경만 38경인데 그중 대부분이 기암괴석이다. 보리암이 자리 잡은 만장대는 12경, 쌍홍문은 15경이다. 만장대 서편에는 돌로 두드리면 장고 소리가 난다는 13경 음성굴이 있다. 보리암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바위는 3경인 대장봉이고 그 앞에 허리를 굽힌 바위는 4경인 형리암이다.

이 외에 네 명의 신선이 놀았다는 사선대, 임진왜란 때 100여 명이 피란했다는 백명굴, 두꺼비 모양의 천마암, 비둘기처럼 생긴 천구암, 촛대 같은 촉대봉, 향로와 같은 향로봉, 사자처럼 생긴 사자암, 여덟 신선이 유희하는 팔선대,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을 살다가 갔다는 부소암, 금산 정상의 망대 등, 말하자면 숨 찬다. 그저 휘 둘러 눈 닿는 모든 것이 비경이다. 쌍홍문에서 왼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19경인 제석봉이 나타난다. 제석님이 내려와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조금 더 가면 20경인 좌선대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수도했다는 곳으로 그들이 앉은 자리가 뚜렷이 패어 있다고 한다. 좌선대에 누군가 앉아 있다. 좌선대는 좌선하기 좋은 바위임이 틀림없다. 아주 오래전에도 누군가 좌선해 있었다. 그는 말했었다. "저곳, 전체가 상사(想思)바위요. 저곳에 가면 바다가 더 잘 보일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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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바위는 금산에 있는 바위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곳에 올라 기도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도 한다.

◆상사바위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산'은 1986년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남해 금산에는 하필이면 상사바위가 있다. 상사바위는 금산에 있는 바위 중 최고로 규모가 큰 바위다. 너무 절벽이라 속세를 버릴 수 있다고도 하고 이 바위에 올라 기도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도 한다. 좌선대에서 바라보면 상사바위는 늙은 암사자의 슬픈 얼굴 같다.

상사바위에 서면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발아래로는 은모래로 유명한 상주해수욕장이 초승달로 누웠다. 서쪽으로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이 귀양살이를 했다는 노도가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는 앵강만 건너로 설흘산도 가깝다. 빤히 보이는 보리암 방면으로는 저마다의 사연과 전설을 가진 바위들이 기묘한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상사바위에도 전설이 있다. 옛날 한 남자가 한 여인을 사모하여 상사병에 걸렸단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여인은 이 바위에서 남자의 병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또 한 남자는 머슴으로 살던 집의 아가씨를 마음에 품었다가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죽어 뱀이 된 그는 아가씨의 몸을 휘감아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 바위에 올라 굿을 하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상사바위는 한 남자와 한 아가씨를 살린 바위다. 멀리 해수관음의 옆모습이 보인다. 그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있다. 해수관음처럼, 상사바위처럼, 혹은 늙은 암사자처럼 바다를 본다. 그윽했고, 아름다운 적요와 깊은 평안의 바다였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 방향으로 가다 내서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진주 방향으로 간다. 진주 지나 사천IC에서 내려 3번 국도를 타고 삼천포로 간 뒤 삼천포대교 건너 계속 3번 국도로 직진, 지족삼거리에서 창선교 건너 오른쪽 1024번 도로로 간다. 무림사거리에서 좌회전해 19번 남해대로를 타고 가다 앵강휴게소 지나 왼쪽 보리암로로 가면 된다. 금산 입구에 복곡1주차장이 있고 매표소 앞에 복곡2주차장이 있다. 2주차장이 만차가 되면 1주차장에서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 주차장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으며 요금은 왕복 2천500원이다. 국립공원 주차비는 5천원, 보리암 입장료는 어른 1천원, 학생(학생증 소지)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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