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그쳐서는 안 돼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그들이 품은 꿈 실현 위해서
어떤 노력 하는지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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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
올겨울 유난히 매서운 추위에 잔뜩 웅크려 있다가, 지난겨울 한 TV 역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이 생각났어요. 촬영 장소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었는데, 당연히 강의실같이 따뜻한 실내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몸매를 감추기 위해 얇은 옷을 차려입고 갔는데, 저를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옥사로 데리고 갔어요. 하필 그날은 최고로 추웠던 날이라 스태프들은 모두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연진을 위해선 무릎 담요와 발밑에는 전기난로까지 준비해 놓았더군요. 그런데 저는 특별 게스트라서 오프닝을 녹화하는 동안에는 카메라 밖에서 대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혼자만 떨고 있는데, 창틈으로 손바닥만큼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햇빛이 반가웠던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때 갑자기 난방도 없는 옥사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던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이 떠올라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경북 안동에 있는 임청각의 주인이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은 1911년 정월에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습니다. 서간도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선생과 가족들은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요. 선생은 그곳에서 한인 자치조직인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웠고 훗날 신흥무관학교로 발전시켰습니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끄는 국무령에 추대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1932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광복 45년이 지난 1990년이었습니다. 한편 선생이 별세하고 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후손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임청각이 제 모습을 찾고, 후손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아직도 건국훈장의 3등급에 해당하는 독립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손자며느리 허은 지사도 2018년에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고난에 찬 인생을 마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공적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훈을 받은 여성은 전체 독립운동가의 2%를 겨우 넘는 실정인데요. 그 이유는 그동안 독립운동가들을 먹이고 입혔던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사의 서훈은 독립운동의 평가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나 하는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들이 품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 했던 가치와는 전혀 다른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거나 오히려 동조하고 있다면 감히 그분들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이해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단지 과거를 알기 위해서 역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현재사'는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설명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역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물으려 합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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