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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사랑은 행동하는 것이다

2023-01-13

[정만진의 문학 향기] 사랑은 행동하는 것이다
정만진 소설가

1599년 1월13일 영국 시인 에드먼드 스펜서가 세상을 떠났다. 스펜서는 셰익스피어보다 12년 일찍 태어나 17년 먼저 타계했다. 그는 '희곡의 셰익스피어'에 견주어 '시의 스펜서'로 불릴 만큼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빛낸 예술가였다.

스펜서의 대표작으로는 28세 때 발표한 장편 서사시 '요정 여왕'이 흔히 거론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시 속에 자신이 멋지게 비유된 데 만족해 스펜서에게 연금까지 주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 시는 인용하기 곤란한 단점 탓에 일반 독자에게 널리 알려지기 어렵다. '요정 여왕'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짧은 서정시 한 편을 감상해 본다.

"내 연인은 얼음 같은데 나는 불이네/ 그녀는 너무나 차가워서/ 내 뜨거운 마음으로도 녹일 수가 없네/ 내가 애타게 사랑을 호소할수록 그녀는 점점 더 싸늘해지네"

"나의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은/ 그녀의 얼음장처럼 냉랭한 심장에도 진정되지 않아/ 끓어오르는 땀에 델 것만 같네/ 불길은 어째서 더욱 세게 타오르는가"

여기까지만 보면 '이 정도 시인을 셰익스피어에 견준다고?' 싶은 의아심이 솟구친다. 예술은 독창성이 생명인데 이 시의 표현력은 그저 그런 시인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없을 리 없다. 서사가 아닌 시도 예측 불허의 상상력을 보여주어야 감동과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이보다 더한 기적이 어디 있을까"라는 행이 반환점이다.

"모든 것을 녹이는 불이 얼음을 더 굳게 하고/ 냉기로 가득 찬 얼음이 불을 타오르게 하네/ 사랑의 힘은 참으로 커서/ 자연의 법칙마저 바꿀 수 있구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떠오른다. 프롬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 된다"고 했다.

에리히 프롬이 한국인이었으면 고구려 안장왕을 사례로 거론했을 것이다. 안장왕이 태자 시절 백제에 잠입했다가 한씨녀와 연인이 되었다. 태자는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당신을 데리고 가겠노라 언약하고 고구려로 돌아갔다.

한씨녀는 백제 태수의 청혼을 거절하다가 죽을 상황에 놓였다. 안장왕은 장군 을밀을 선봉대로 삼아 한씨녀가 잡혀 있는 고양 일대를 공격했다. 사랑의 힘이 참으로 크다는 사실을 안장왕과 한씨녀는 행동으로 역사에 남겨주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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