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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
딸이 옷 많이 산다고 누가 말했던가. 우리 집 아들을 보면 여성이 옷 많이 산다는 것도 편견이다. 수시로 배달되는 옷 상자를 보면서 "이 녀석이 또 주문했구먼" 하며 혀를 끌끌 찰 정도다. 이러니 옷장이 가득 찰 수밖에. 견디다 못해 "안 입는 옷 정리하라"는 잔소리 끝에 아들로부터 버림받은 한 무더기의 옷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큰길에서 집으로 오는 100여m의 골목길에 3개나 있던 재활용의류수거함이 하나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넣으니 얇은 옷은 10ℓ나 20ℓ에 서너 개 넣을 수 있는데 겨울코트, 패딩은 이 크기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한숨이 나왔다. 사는 데도 돈, 버리는 데도 돈이다.
젊은 층이 즐기는 패스트푸드처럼 패션계에도 패스트패션 바람이 불고 있다. 급변하는 소비 취향에 맞춰 이들을 잡기 위해 빠르게 의류를 생산하는 구조를 갖게 됐다. 한 해에도 몇 번씩 새 스타일의 옷이 출시되니, 소비자는 다시 의류를 빠르게 소비한 뒤 버리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내에서 나오는 의류폐기물은 연간 수만t에 이른다. 환경부에 따르면 그 양이 2018년 6만6천t에서 2020년 8만2천t으로 급증했다. 의류폐기물 처리가 국내에서 감당하기 힘드니 이를 수출한다. 한국의 헌 옷 수출량은 미국·중국·영국·독일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다.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으로 대부분 수출된다. 이들 국가는 선진국으로부터 헌 옷을 수입 후 선별해 재활용·재사용한다. 이들 나라도 이젠 수입한 옷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처치 곤란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가나, 칠레 등엔 헌 옷 쓰레기 산이 있을 정도다. 자원 낭비뿐만 아니라 유독한 화학 성분 때문에 바다와 주변 환경을 오염시킨다.
의류의 환경오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 약 2천ℓ, 청바지 한 벌 생산에 약 7천ℓ의 물이 사용된다고 한다. 다양한 염료, 표백제 등도 수질을 오염시킨다. 의류 제조에 쓰인 폐수가 전 세계 폐수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패션기업, 특히 패스트패션 생산업체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인 우리가 과연 그들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이다. 온라인에서 중고 의류를 거래하는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슬로패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의류의 생산·소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특히 중고 의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남이 입었던 옷은 찝찝해 구매를 꺼렸던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는 데다 중고 의류 구매를 친환경 활동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사의 재활용 패션도 한몫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 순방길에서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단골 패션 아이템인 가방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 여사가 외교무대에 등장할 때 자주 든 국내 재활용 패션브랜드 '할리케이'의 가방이다. 이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공식행사에 페트병을 재활용한 재생섬유 원단과 자투리 천으로 제작한 한복을 입고 나와 주목받았다.
지금 이 순간도 수없이 많은 옷이 생산되고, 멀쩡한데도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값싼 의류에, 급변하는 유행에 버리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이젠 그 속도를 늦춰야 한다.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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