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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팔이 들이굽지 내굽나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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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문화예술 지원정책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있다. 영국 예술평의회에서 1945년 채택한 이 원칙은 한국에서도 시대와 정세가 변화해도 정부의 문화 기조를 나타내거나 문화예술계와 대립에 처했을 때 자율성을 존중하려는 메시지로 쓰인다.

'원칙'은 일상이나 업무에서 지키지 않더라도 바로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민법으로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을 때 법원의 판단에서 영향을 미친다. 통상 계약 실무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처음 접하게 되는데 민법 제2조에서는 신의·성실을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정의한다. 사회의 기본을 결속하는 조문이다.

한때는 '팔길이 원칙'을 마음 깊이 숭고한 철학으로 새기며 문화예술 현장과 문화예술 행정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현장과 행정의 폭넓은 다양성과 계획과 달리 일어나는 재난 등의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팔길이 원칙에 담긴 '하되, 간섭, 않는다'이 세 단어가 서로의 경계를 평행선으로 양분하는 듯 느끼기 시작했다. 예술의 가치는 언어로 제약하기 어렵다.

지난해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시행되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법률로 보장받게 되었다. 문화예술진흥법과 문화기본법처럼 정책의 발전과 문화예술계 지원의 근거를 확대하기 위한 조문도 있지만, 예술인의 권리는 태생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데 이를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서는 그 배경과 씁쓸함에 '팔길이 원칙'이 다시 수용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의 현장과 행정은 앞만 보고 평행선을 달리기보다 서로 상생하며 발전한다. 때론 한쪽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도 인적 인프라와 예술적 역량을 기반으로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 예술 현장이 개척되지 않은 토양은 스스로 일구어가며 특별한 지원 없이도 문화자산을 생산했다. 행정은 우수한 시설과 기반을 마련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장의 예술인이 춤추도록 한다. 또한 평론가의 건설적인 비평은 선순환의 원동력이 된다.

현대의 팔길이는 서로의 거리를 보호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현장의 예술인과 대화하며 안으로 팔을 굽혀야 이상적인 정책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팔은 들이굽지 내굽지 않는다. '팔길이 원칙'에 대한 나의 계속된 고민은 존경하는 문화행정가의 이임사에서 후배 문화행정가들에게 전하는 격언으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프랑스 꼴린느국립극장 행정감독 알랭 에르조그의 말이다. "예술가는 불가능한 것을 제시하고, 행정가는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김상욱<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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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대구서구문화회관 공연기획P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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