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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선과 창] 금계국 단상

2023-06-07

짝사랑한 사람의 실체 '난봉꾼'
풍문처럼 실망 안긴 외래식물
설 자리 잃은 억울한 토종꽃
내 아름다움의 자리가 상대를
아프게 떠민 건 아닌지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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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 (소설가)

오월 말에서 유월 초, 나름 즐기기 좋은 때이다. 꽃가루와 황사는 지났고 장마와 더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은 가을 날씨에 견줄 만큼 야외로 나가기 좋은 계절이다. 공터를 지나 고속도로변 너머 야산 둔덕까지 온통 샛노란 꽃물결이다. 꽃 자체로도 너무 예쁜데 우리 산천의 푸르름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눈이 즐겁다. 차창을 통해 지나는 어떤 구간은 마치 알프스 산자락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이국적이고 목가적이기까지 하다.

이름마저 특이한 금계국이 지천이다. 꽃이 필 때마다 금계국인지 계금국인지 헷갈려 검색하게 만드는 그 꽃이 알고 보니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이란다. 요즘 흔히 보이는 그 꽃은 엄밀히 말하면 큰금계국이다. 이 꽃은 금계국과 달리 여러해살이풀로 씨앗의 번식력과 뿌리의 생명력이 강하단다. 꽃길 조성사업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이제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관리 대상 식물로 찍혀 뿌리째 뽑히는 신세란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진도 유해성 2등급 외래식물로 발표한 바 있단다. 짝사랑했던 사람이 난봉꾼이란 풍문을 들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 실망감이 밀려온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름답게만 느껴지던 꽃이 요주의 혐의를 받는다니 한순간에 삐딱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잘못 없는 금계국이 주는 혼란 속에서 괜히 그 주변 꽃들 시점이 되어 보는 것이다. 온 여름 산과 들이 샛노랗게 뒤덮일 때, 그 그늘에서 지옥을 앓는 꽃들이 있을 수 있다니. 금계국에 자리를 내준 토종식물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갈 그들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아름다움도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말해져야 정당하다. 큰금계국이 뻗어간 자리엔 동자꽃도 피어야 하고 각시원추리나 물매화, 부처꽃이나 토종 수국 자리도 있어야 마땅하다. 가꾸기 쉽고, 보기에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몰개성한 아름다움을 방치한다면 이 또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람살이도 다르지 않다. 힘의 논리로 어떤 경계를 확장하거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덜 뿌리고 더 솎아내 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부지불식간에 울타리를 허물어 똬리를 틀면 먼저 불편감이 감돈다. 어느 순간 그 불편이 불안을 조성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이다.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것들에 연민, 뿌리 약한 것들에 대한 배려가 언제나 고려되어야 한다. 약하고 예민한 이들의 애절한 시간에 관용의 시선을 둘 줄 알아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시절 인연'이란 말이 있다. 불교 용어에서 연유했지만, 대중적 의미로는 어떤 인연이든 오고가는 시기가 있음을 일컬을 때 쓰인다. 관계란 동병상련일 때 지속적인 공감을 얻고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탈이 나게 되어 있다. 관계에 유효 기간이나 유통 기한이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절 인연이란 말은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통찰 서린 말 중의 하나이다.

짧은 생 다양한 만남을 이루는 동안 우리는 그때그때 만나게 되는 인연과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유한한 삶에서 가장 깊게 다뤄야 할 부분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 타자를 인정하는 일이다. 보기 좋은 한 지점에서 적당히 뿌리를 멈추고 스스로 돌아보기. 너무 뻗으면 삶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끝내 관계를 망가뜨린다. 내 기쁨이 번질수록 저쪽 아픔도 커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내 아름다움의 자리가 상대를 아프게 하고 뿜어낸 자리가 아닌지 살필 일이다.

김살로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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