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운 문화부장 |
최근 들어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았다. 대구의 시민문화공동체 '시인보호구역'이 폐업 위기에 처했고, 항일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264작은문학관'도 경영난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시인보호구역은 2012년 대구 중구 김광석길에서 시작해 11년째 운영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금은 수성구 두산동에 둥지를 틀고 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시민과 소통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문학에 뜻이 있는 이들이 이곳에서 작가의 꿈을 키웠고, 의미 있는 창작 생태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문학모임과 문학동인, 시창작교실은 물론 월간 시인보호구역을 발간하고 인문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기도 했다. 다양한 출판물도 펴냈다. 대구 출신 작가이면서 인기 가수인 이솔로몬도 이곳에서 문학의 꿈을 키우며 인연을 맺어왔다. 무엇보다 시민문화공동체를 지향하며 '돈 안 되는 일'을 자처했다.
하지만 결국 자본의 매서운 칼날 앞에 던져지고 말았다. 월세를 내기도 버거울 만큼 경영난에 처해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 다행히 지역 청년들이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시인보호구역 살리기에 나섰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항일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리는 대구 중구 '264작은문학관'도 개관 7년만에 지난 5월 폐관했다. 역시 경영난 때문이다.
264작은문학관은 2016년 10월 20여 년간 육사 연구에 매진해온 박현수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가 사비를 털어 설립했다. 생애 절반 가까이를 대구에 적을 두고 산 이육사의 행적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해 안동의 이육사문학관과 차별화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문학관이지만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264작은문학관 역시 자본 앞에 문을 닫아야 했다. 코로나 이후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이육사의 대구 행적을 알리는 데 할 만큼 했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인식도 높아져 관련 단체까지 생긴 것에 만족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시인보호구역과 264작은문학관의 소식을 들으며 시장경제의 잔혹함을 여실히 느낀다. 마치 인문학이 폐업하고 역사가 폐관한 듯 아쉽기만 하다. 자본의 논리에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본연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만 하다. 물론 민간의 영역이니 하소연할 때도 마땅찮다.
그러면서 폐업과 폐관에 이르도록 무심했던 지역사회에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 역시 작은 도움조차 주지 못한 것에 반성한다. 시인보호구역의 소식을 들은 한 시인은 "지역문인들이라도 관심을 갖고 계속 힘을 보탰어야 하는데, 문단의 폐쇄성과 끼리끼리 문화가 팽배해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고 하소연했다. 정훈교 시인보호구역 대표도 "지역에서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인보호구역은 그동안 대관과 문화 행사를 열고 커피와 책을 팔며 버텨왔다. 하지만 크게 수익이 나지 않았다. 때문에 관에서 발주하는 다양한 지원사업을 신청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정 대표의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최소한의 운영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 문단뿐만이 아니다. 대구시나 구청이 나서 민간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다. 시인보호구역과 264작은문학관은 한 개인의 영역이기 전에 대구의 인문·역사 자산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무관심에 무심히 사라져가는 것,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백승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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