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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상처받은 아이들이 학부모가 됐는데…

2023-08-04

교권 침해하는 학부모 갑질

학창시절 받은 상처에 기인

경쟁교육에 훈육수단 제한

고삐풀린 학부모 막으려면

학교 교실부터 바로 세워야

[하프타임] 상처받은 아이들이 학부모가 됐는데…
이효설 사회부 차장

고등학생 때, 수업시작 종이 쳤는데 잡담을 했다면서 출석부로 얼굴을 수십 대 맞은 친구가 있다. 교단 앞으로 불려 나간 친구는 떠들지 않았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묵살했다. 양쪽 볼이 벌겋게 부은 채 자리로 돌아온 친구는 7교시 마지막 종이 칠 때까지 흐느껴 울었다. 그 사건 후, 우리는 그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나면 가던 길을 돌아서 갔다.

대학 졸업 후 동창 모임에서 만난 한 동기는 중2 때, 같은 독서실을 다녔던 중3 선배의 노트를 훔쳤다며 자신에게 도둑 누명을 씌웠던 교사 이야기를 하며 벌벌 떨었다. "노트를 내놓으라"는 교사의 막무가내에 자신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울면서 항의했지만 끝내 믿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지만, 집에 가서 부모에게 말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생긴 일로 선생님을 만나 따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이제 학부모가 됐다. 1980년대생이 현재 젊은 학부모 축에 들 것이다. 이들의 내면엔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학교에서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남다른 결의가 웅크리고 있다. 여기에 저출산 영향으로 자식 하나를 소위 '소황제'처럼 키우는 학부모들이 적잖다. 아이가 친구에게 맞았다고 변호사를 대동해 교장실로 들이닥치거나 교사에게 '우리 애 졸업 때까지 결혼하지 말라' '우리 아이가 화장실 가는 시간을 체크해 달라'는 선을 넘은 학부모 갑질은 같은 연장선으로 보인다.

한 아이가 그렇게 학부모가 되는 동안 한국 교육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킬러문항' 논쟁만 보더라도 교육에 대한 어른들의 진지한 고민은 실종됐다. 알 만한 교육 인사들도 변별력, 사교육, 학생 선발 등 기술적 차원에서만 갑론을박한다. 기형적 입시제도에 대한 근본적 비판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입시지옥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일말의 걱정이 없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의 훈육할 수단은 갈수록 제한됐고 학부모들의 민원은 고삐가 풀려 통제가 안 되는 지경이 됐다.

구글 검색창에 '한국 학생'을 입력하자, 놀랍게도 가장 상단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한국 학생들'이란 블로그가 보인다. 알고 보니 프랑스 신문 '르 몽드'가 "한국 아이들은 성적은 우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학생들이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으로 보도한 것을 인용한 글이다.

이처럼 무한경쟁, 서열화, 과잉의 학습 노동에만 초점이 맞춰진 교실에서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러한 교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 존엄의 감수성을 도저히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사회인이 됐을 때 성숙한 시민 의식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요약하건대,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지금의 교권 침해 문제는 학생 인권 탓이 아니다. 숨 막히는 경쟁 교육의 교실 안에서 성적순으로 서열이 매겨진 아이들은 자존감을 키울 수 없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엄을 자각하는 것조차 배우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지금 몸집만 커진 몬스터로 변신해 교사들을 물어뜯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교육 당국은 교권을 살리고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뜯어고쳐 면피할 것이 아니라 학교 교실을 바로 세우고 입시에 고통받는 학생들을 구해낼 방법부터 찾길 바란다.

이효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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