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건물서 냉장고 없이 장사하는 상인들
손님은 줄고 인건비 눌어, 운영난 호소
복구 약속했던 대구시는 경찰과 책임 공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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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구 북구 농수산물도매시장 화재 피해 상인들이 영업하는 임시 가설물 내부 모습. 선풍기가 냉장시설을 대체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박영민 수습기자 ympark@yeongnam.com |
"명색이 채소 도매인인데, 가게에 냉장고 하나 없어요."
추석 대목을 3주가량 앞둔 지난 6일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만난 상인 류근호(60)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지난해 10월 시장을 덮친 화마는 그가 30여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뺏어갔다. 화재 이후 시장 모퉁이에 마련된 임시 가설물에서 힘겹게 장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점점 힘에 부친다.
류씨는 "명절 대목인데 채소를 저장해놓을 냉장고가 없어 물건을 많이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빨리 이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끔찍했던 화재 악몽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됐지만,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빠른 복구를 약속했던 대구시도 복구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경찰과 책임 소재 공방만 벌이는 모습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로 피해를 본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A동 점포는 68곳이다. 현재 피해 상인들은 A동 앞 주차장에 설치된 임시 가설물에서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가 길어지면서 상인들의 고통도 갈수록 커져만 간다. 가설물로 옮긴 상인들은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경매장으로부터 100여m 멀어지면서 물건을 옮기기 위해 추가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다. 비나 눈이라도 내리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출 금액은 늘어나는 데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본 건물과 멀어지면서 고객의 발길마저 뚝 끊겼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농산물 등을 적재할 냉장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임시 가설물은 취약한 전기 설비 탓에 에어컨 가동만으로도 차단기가 자주 내려가는 실정이다. 개인 냉장고를 가져와도 사용이 힘든 상황이다. 상인들은 급한 대로 에어컨을 세게 틀어 냉장고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문연자(57)씨는 "임시방편으로 에어컨을 세게 틀고, 문단속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기세는 배로 들고, 채소 품질은 갈수록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복구 소식은 기약이 없다. 대구시가 경찰과 책임 소재 공방을 벌이면서 복구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당초 대구시는 지난 3월 설계작업에 착수해 이달 도면을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경찰 수사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최상욱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은 "복구 계획과 예산도 마련돼 있었는데, 경찰 수사 일정이 미뤄지면서 함께 지연되고 있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빠르게 복구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조현진 매천시장 화재대책위원장은 "경찰 수사와 복구작업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루빨리 복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박영민 수습기자 ym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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