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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카레예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2024-07-26

홍범도 장군의 흔적 어린 극장
소련 전역에 배포된 한글신문
카자흐 고려인 인구 0.6% 불과
강제이주 기억과 유물 지켜낼
고려인 역사박물관 건립 시급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카레예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카자흐스탄의 전 수도인 알마티까지 4천㎞를 날아가는데 6시간 정도 걸렸는데요. 1937년에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던 고려인들은, 열차에 실려 훨씬 더 먼 거리를 두 달 가까이나 이동했습니다.

알마티에서 국내선으로 1시간 반 거리의 크질오르다에 도착해서, 먼저 홍범도 장군님을 뵈었어요. 장군님을 마주하니, 작년에 국내에서 벌어졌던 소동 때문에, 더욱 송구스러웠습니다. 민족교육을 위해 애쓰셨던 계봉우 지사님께도 인사를 드렸어요.

현지 고려인협회 회장단이 나와서 환영해 주셨습니다. 박 데니스 회장은 고려인의 피가 25%라는, 푸른 눈의 잘생긴 청년이었어요. 한국어도 고향도 모르지만, 밀양이라는 본관은 알았고 스스로 고려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 정부가 이곳으로 강제이주 시킨 이유에는, 이 지역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지요. 고려인들은 농사를 잘 짓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르다리아 강을 따라 고려인들의 집단농장인 콜호즈가 이어지고 있었다고 해요.

크질오르다에는 홍범도 거리도 있었습니다. 장군이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고려극장은, 현재 지역을 위한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아쉬운 것은 1951년에 건립했던 비석의 행방을 현지 고려인들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슈토베는 알마티에서 차량으로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지역인데, 고려인들이 처음 도착했던 곳이지요. 그들이 최초로 정착했던, 지금은 공동묘지가 되어 버린 바슈토베 언덕을 찾았습니다. 허허벌판에 움집을 짓고 첫 겨울을 지내야 했던 곳이지요.

알마티에는 '고려일보'가 있습니다. 1923년 '선봉'으로 시작하여, 강제이주 후에는 '레닌기치'라는 이름으로 전 소련 지역에서 배포되었던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는데요. 요즘은 러시아어와 함께 발간하고 있습니다.

고려극장은 강제이주 후에 크질오르다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가 1942년에 우슈토베로 이동했지요. 1968년부터 알마티로 옮겼는데,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 음악 및 코미디 극장'이 공식 명칭입니다. 최근에는 국가 최고의 위상인 아카데미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고려인들을 흔히 카레이스키라고 하는데요. 이는 '한민족의'를 뜻하는 형용사로서, 고려인을 의미하는 경우에는 카레예츠가 맞다고 합니다.

고려인들 대부분이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 토굴을 파고 살았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것은 소련공산당의 명령을 단 3개월 안에 집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과 무질서의 결과로, 극히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었답니다.

그 후 고려인들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농업 면에서 가장 큰 성과를 올린 소수민족이 되었지요. 콜호즈와 '고본지'라 부르는 계절농업을 통해 성공한 고려인들은 점차 유라시아 전역으로 이주해 나갔습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은, 전 인구의 0.6%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고려인협회의 회장들은 대부분 30~40대의 젊은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다른 민족과 혼인을 통해 외모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고려인 박물관의 건립이 시급하다고 느꼈습니다. 강제이주 1세대들은 거의 다 세상을 떠났고 2세들도 고령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과 유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할 공간이 필요해요. 이들의 역사도, 우리 민족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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