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영화평론가 |
파리올림픽이 한창이지만 그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개막 한 달 전부터 국가대표 선수단의 소식을 내보내고, 메달 가능성이 있는 종목을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방송가가 올림픽 특수를 누렸던 것이 언제던가. 코로나 팬데믹과 겹치면서 최악의 국제 이벤트로 남게 된 도쿄올림픽도 한몫을 했겠지만, 국내에서 올림픽의 화제성이 떨어진 건 그로부터 한참 전이다. 이것은 물론 우리 대표팀의 성적과도 관련이 있다. 서울올림픽 4위의 기록은 신화적인 것이니 묻어둔다 해도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팀이 한 자릿수의 종합성적을 기록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2021년에 치러졌던 도쿄올림픽에서는 16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23위) 이후 최악의 성적이며, 금메달 숫자는 4개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3개) 이후 가장 적다.
그러나 우리의 성적과 관계없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실력을 겨루는 올림픽 경기에는 어떤 픽션보다 놀라운 이야기와 진한 감동이 잠재해 있다. 때로는 기적 같은 승리가 일구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선수들 사이의 휴머니즘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스포츠 팬들은 자기 팀을 응원하는 한편,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든 선수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가령, 파리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금지현 선수는 작년 5월에 딸을 출산했는데, 만삭이 될 때까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훈련과 시합 출전을 강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뜨거운 축하와 응원 세례를 받고 있다. 드라마는 경기장 밖에서부터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스포츠의 놀랍고 감동적인 드라마는 직접 경기에서 뛰는 선수들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일(31일) 개봉하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감독 선호빈, 나바루, 이하 '수카바티')은 FC안양의 서포터즈, A.S.U 레드(Anyang Supporters Union 레드, 이하 '레드')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제목이자 레드의 응원구호에 등장하는 '수카바티'는 인도어로 '극락'이라는 뜻인데, '안양(安養)'이라는 도시의 의미가 바로 극락이라고 한다. 구단이나 감독, 선수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죽어도 선덜랜드'(넷플릭스) 등의 축구 다큐 시리즈와 차별화된다. 즉, '수카바티'는 국내 축구응원단의 역사는 물론 FC안양의 역사도 온전히 서포터즈의 시각에서 써내려가고 있다. 안양에는 본래 LG치타스라는 축구팀이 있었고, 서포터즈도 결성되었으나 2004년에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선언해 버린다. 영화에 담긴 서포터즈들의 인터뷰는 그 당시 그들이 받았던 충격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러나 레드는 슬픔에 잠겨 있는 대신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르는 시민축구단 창단을 꿈꾸며 제안서를 꼼꼼히 준비한다. 몇 년 후, 그들의 열망과 노력은 안양시장에 당선된 한 축구팬의 지지로 빛을 보게 되었고, 9년 만에 안양시는 다시 축구팀을 갖게 된다. 서포터즈들의 감격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달된다.
창단선언이 있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FC안양은 아직 2부 리그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팀을 향한 서포터즈들의 순애보만큼은 다른 팀의 선수와 감독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명하다. 경기장 밖에서 레드는 스스로 서사가 된 것이다.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위상은 떨어졌어도 올림픽 뉴스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푹푹 찌는 삼복더위 속의 우리에게 스포츠의 시원한 드라마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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