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0907010000949

영남일보TV

[동 추 거문고 이야기]〈17〉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

2024-09-20

활 장인, 새로운 곡조를 짓는 거문고 명인이 되다

[동 추  거문고 이야기]〈17〉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
정래교의 '완암집' 중 '김성기전(金聖基傳)'.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그의 전기(傳記)가 전할 정도로 유명했던 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1649∼1725). 고매한 정신까지 겸비했던 그는 거문고뿐만 아니라 퉁소, 대금, 비파 등에 두루 능한 명인이었다. 어은(漁隱), 어옹(漁翁), 조은(釣隱) 등을 호로 삼았던 그는 시조에도 능했다. 김성기는 18세기 풍류방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풍류방은 조선 후기, '영산회상' 등에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인 금객(琴客)과 가곡이나 시조 등에 능통한 가객(歌客)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던 곳을 말한다.

18세기 풍류방 음악 기틀 마련한 대표 인물
궁중서 활 만들다 왕세기에 거문고 연주 배워
인기 왕실 악사였으나 은거 후 창작에 전념


[동 추  거문고 이야기]〈17〉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
김성기의 거문고곡을 모은 '낭옹신보(浪翁新譜)' 표지. <녹우당(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가) 소장>

◆활 장인에서 거문고 연주자로

평민 출신인 그는 원래 궁중의 기관인 상의원에서 활을 만들던 장인이었다. 그러나 본업보다는 거문고에 더 관심을 가져 결국 활을 버리고 거문고에 빠져들었다.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의 문집 '추재집' 중 '김금사(金琴師)'에 김성기가 거문고를 배우는 과정과 관련한 일화가 전하고 있다. '금사(琴師) 김성기는 왕세기(王世基)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세기는 새 곡조가 나올 때마다 비밀에 부치고 성기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자 성기가 밤마다 세기의 집 창 앞에 붙어 서서 몰래 엿듣고는 이튿날 아침에 그대로 탔는데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세기가 이상히 여겨 밤중에 거문고를 반쯤 타다 말고 창문을 갑자기 열어젖히자 성기가 깜짝 놀라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세기가 매우 기특하게 여겨 자기가 지은 것을 다 가르쳐주었다.'

그는 나중에 왕실 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의 악사가 됐다. 고관들의 잔치마다 불려갈 정도로 김성기의 인기는 대단했으나 얼마 후 악사 자리에서 물러나 강가에 은거, 낚시로 소일하며 생활했다. 그는 조그마한 배 한 척을 구해 서호에 띄워놓고 낚시를 즐기며 '조은(釣隱)'이라 호를 지었다. 그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기예를 파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제자들로부터 사례도 받지 않아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큰 잔치가 벌어질 때 재능 있다는 음악가들이 다 모였다 하더라도 거기에 김성기가 빠지면 흠으로 여길 정도'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그는 절개가 굳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1723년 신임사화를 일으킨 당시의 권력자 목호룡이 잔치 자리에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자 억지로 끌어오게 했다. 그러자 김성기는 연주하고 있던 비파를 데리러 온 사람 앞에 던지면서 크게 화를 내고 질책했다고 한다.

은거 후 창작에 전념했는데, 김성기의 작품은 제자들이 편찬한 '낭옹신보(浪翁新譜)' '어은보(漁隱譜)' 등에 전한다. 옛 음악을 복원하는 데도 관심을 쏟았다. 평조삭대엽 등은 황진이 등 개성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명맥을 이어온 고려 음악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당대의 가객(歌客) 김천택과도 가까이 지냈다. 김천택의 노래와 김성기의 거문고 연주는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며 당시 애호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어떤 삶을 희망하며 살았는지 엿볼 수 있는 그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홍진(紅塵)을 다 떨치고 죽장망혜(竹杖芒鞋) 짚고 신고/ 거문고(玄琴) 둘러메고 동천(洞天)으로 들어가니/ 어디서 짝 잃은 학려성이 구름 밖에 들린다'.

여러 악보 스스로 만들고 퉁소·비파도 다뤄
큰 잔치에 빠지면 흠이 될 정도로 이름 떨쳐
평조삭대엽 등 옛 고려 음악 복원에도 관심


[동 추  거문고 이야기]〈17〉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
김성기의 거문고곡을 모은 '낭옹신보(浪翁新譜)' 악보 중 '삭대엽' 부분. <녹우당(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종가) 소장>

◆정래교의 '김성기전'

조선 후기 시인 완암(浣巖) 정래교(1681~1759)의 문집 '완암집'에 전하는 '김성기전(金聖基傳)'을 소개한다. '금사(琴師) 김성기라는 사람은 처음엔 상의원(尙衣院)의 활 만드는 사람이었다. 성품이 음률을 좋아해 작업장에 있으면서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사람을 따라다니며 거문고를 배워 연주법을 정밀하게 터득할 수 있었고, 마침내 활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거문고에 전념했다. 악공 중에 잘하는 이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또한 퉁소와 비파도 곁가지로 이해하여 모두 오묘함을 다했다. 스스로 새로운 소리를 지을 수 있었고, 그의 악보를 배워 이름을 떨친 이들이 많았다. 이때 서울에 김성기의 새로운 악보들이 있게 되었다. 인가에서 손님을 모아 잔치하며 마실 때 비록 뭇 광대들이 당을 채우더라도 성기가 없으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집은 가난하여 유랑해야 했기 때문에 처자식은 주림과 추위를 피하질 못했다. 만년에 서호(마포·양화진 등 일대) 가에 세내어 기거했다. 작은 거룻배를 사고 대껍질로 만든 도롱이를 쓴 채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낚시질하여 자급자족하면서 조은(釣隱)이라고 자호했다. 밤바람이 고요하고 달은 휘영청 떠 있을 때 중류로 노를 저어 퉁소를 가져다 3~4곡조를 불어대니, 애절하고 원통하지만 맑고도 밝은 소리가 구름을 뚫을 정도였다. 언덕 위에서 듣는 이들이 배회하며 돌아가질 못했다. 궁궐의 머슴인 목호룡(1684~1724)이란 사람이 반역행위를 고발하면서 큰 옥사를 일으켰고 관료들을 도륙하여 공신이 되어 군에 봉해졌다. 그 기운의 불꽃이 사람을 그을릴 정도였다. 그가 무리를 크게 모아 마실 적에 안장 달린 말을 갖추어 금사 김성기를 초청했지만, 성기는 병들었다고 핑계대고 가지 않았다. 부르러 온 사람이 몇 무리에 이르도록 뻗대고 누운 채 움직이질 않았다. 목호룡은 화를 몹시 내며 그를 협박하며 "오지 않는다면 내가 장차 너를 크게 욕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는 그때 손님과 비파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는 크게 화내며 비파를 심부름꾼 앞에 던지고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 호룡에게 말하게. 내 나이 일흔인데 어찌 너 따위를 두려워하겠나? 반란을 고발하는 걸 좋아하는데 또 반란했다고 고발해서 나를 죽여라."

[동 추  거문고 이야기]〈17〉거문고 명인 어은(漁隱) 김성기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이 말을 전해들은 목호룡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고, 모임도 그만뒀다. 이때부터 성기는 서울에 들어가지 않고 사람들에게 재주를 보이는 걸 드물게 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강가에 방문하면 퉁소를 불며 즐겼지만, 몇 곡조만 부르고 그만두니 흥이 질펀해지도록 하진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김금사의 이름을 들었고, 친구의 집에서 그를 만났는데 귀밑털과 머리털은 세었고 한 어깨는 솟고 뼈는 불거졌으며, 숨은 헐떡대며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힘주어 비파를 잡고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의 음악을 연주하면, 좌중이 슬퍼하고 탄식하며 눈물을 떨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비록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웠지만 손과 손톱의 오묘함은 사람을 감동시킴이 이와 같을 수 있으니 전성기 때는 알 만하다. 사람됨이 깨끗하고 곧으며 말수가 적었고 음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곤궁하게 강가에 살면서 장차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았으니, 이것은 어찌 지킬 게 없어 그리한 것이겠는가? 더군다나 목호룡과 같은 적에 분노하고 욕할 때 늠름하여 범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랴. 아! 그는 또한 뇌해청(雷海淸: 당나라 현종 때의 악공으로 임금의 피난을 마음 아파하고 역적이 퍼짐을 분해하며 악기를 땅에 던지고 통곡했다)의 무리일 것이다. 세상의 사대부 중 지조가 없는 부정한 사람이 김금사를 본다면 또한 부끄러움을 알 수 있으리라.' 뇌연(雷淵) 남유용(1697~1773)의 문집 '뇌연집'에도 다른 '김성기전(金聖基傳)'이 전한다.

김봉규 <문화전문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