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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남 밀양 다원마을 혜산서원, 마을 곳곳 오래된 차나무·멋스러운 흙돌담…옛정취에 취하다

2024-09-20

[주말&여행] 경남 밀양 다원마을 혜산서원, 마을 곳곳 오래된 차나무·멋스러운 흙돌담…옛정취에 취하다
비각으로부터 기와를 얹은 흙돌담이 곧게, 그러나 부드럽게 뻗어나간다. 첫 번째 협문은 광산고택, 다음 골목은 혜산서원, 그 다음 문은 다원서당이다.

다원. 마을 입구의 넓은 길 한가운데에 다원이라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누구의 글씨인지 멋스럽기도 하다. 넓은 길이지만 무성한 느티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마을을 감추고 있다. 입구는 도로와 수평이지만 마치 다리처럼 양 옆의 지대가 낮다. 왼쪽 아래는 마을 쉼터다. 멋진 느티나무숲 속을 긴 벤치가 곡선으로 노닌다. 쉼터 앞으로 대문을 낸 지붕 낮은 저 집의 주인은 행복하겠다. 오른쪽 아래는 좁은 개울이다. 마을 뒷산에서 내려온 계류가 남쪽의 단장천 방향으로 간다. 어쩌면 옛날에는 마을 바로 앞으로 도로와 나란히 천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깔깔깔깔깔 명랑한 물소리 위로 두 기의 돌탑이 마을을 연다. 환하고, 밭이 넉넉하고, 멀리 꾀꼬리 봉이 순하게 날개를 펼쳐 마을을 안온히 감싸고 있다.

마을 이름 '다원'은 차나무가 많아 붙여져
조선시대 청백리 손관 처음 가져와 심어
영조때 건립 '서산서원' 격재 손조서 추모
1971년 중건후 '혜산서원'으로 고쳐 편액
독립운동가 손일민 생가터·손병사 고택도


◆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

[주말&여행] 경남 밀양 다원마을 혜산서원, 마을 곳곳 오래된 차나무·멋스러운 흙돌담…옛정취에 취하다
마을 입구의 넓은 길 한가운데에 다원이라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다원은 차나무가 많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다죽리는 밀양 산외면의 중심마을이다. 오래된 옛 마을인 다원, 죽동, 죽서를 합해 다죽이라 했고 지금은 다원, 율전, 죽남 세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일찍 생겨난 마을이 다원이라 한다. 여말선초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일직손씨 세거지가 되었다. 일직은 안동이다. 안동에서 밀양으로 거처를 옮긴 이는 약 600년 전 조선 태종 때 사헌부 감찰, 진성현감(眞城縣監) 등을 지낸 청백리 손관(孫寬)이다. 그는 산외 용평에 터를 잡았고 그의 후손들이 다원리를 비롯해 영천, 김해 등지로 뻗어나갔다고 한다. 진성은 현재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이다. 손관은 진성현감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 차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다원은 차나무가 많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안 개울에 놓인 혜산교를 건넌다. 수목의 그늘 깊은 터에 커다란 신도비각이 자리한다. 안내판이 있지만 빛에 번득여 '격재손선생신도비'라는 것만 겨우 읽는다.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는 손관의 아들이다. 그는 세종시절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 한림학사로 일했고 문종 때 병조정랑을 지냈다.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 등이 스승으로 모셨던 대학자로 경전과 도학에 정통하고 시문의 대가였다고 한다. 그러다 그가 봉산군수로 있을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성삼문 등이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둔했다. 이후 세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455년 이전의 벼슬을 묘비에 써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성종 4년인 1473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각의 북서 모서리에 이파리가 유난히 반들거리는 차나무 한 그루가 있다.

◆ 혜산서원

[주말&여행] 경남 밀양 다원마을 혜산서원, 마을 곳곳 오래된 차나무·멋스러운 흙돌담…옛정취에 취하다
혜산서원. 영조 때인 1753년 격재 손조서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대처 앞 둥그런 나무가 600년 되었다는 차나무다.

비각으로부터 기와를 얹은 흙돌담이 곧게, 그러나 부드럽게 뻗어나간다. 멋스럽고 정갈하다. 감나무는 성마른 잎들을 떨궈내며 발갛게 익은 감들을 드러낸다. 첫 번째 협문을 지난다. 문은 잠겨 있고, 발돋움해 들여다본 담장 안에는 다섯 칸의 광산고택이 홀로 자리한다. 지붕의 용마루 위로 꾀꼬리봉의 날개가 내려앉아 있다. 두 번째는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고샅 끝에 소박한 규모의 삼문이 서 있다. 가슴에 서늘한 바람에 베인 듯 길을 본다.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그들은 영혼이 있다는 것을 외치는 것 같다. 나는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붙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빠르게 그 길을 통과한다.

문에서 마주하는 것은 벽이다. 풀들이 자라난 땅을 밟고 절망과 호기심으로 두리번대며 또 다른 문들을 본다. 풀밭 속에 이른 아침 삼문을 열고 또 중문을 열었을 이의 걸음이 보인다. 그를 따라 좁은 문으로 향한다.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 아래에 '혜산서원(惠山書院)' 현판이 걸려 있다. 영조 때인 1753년 격재 손조서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최초의 이름은 서산서원(西山書院)이었다 한다.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서산고택, 철운재(徹雲齋) 등으로 편액을 바꾸고 가정집처럼 보이도록 경역을 나누어 담장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후 1971년에 중건해 손홍량(孫洪亮), 손조서, 손처눌(孫處訥), 손 린, 손우남(孫宇男) 등 일직손씨 오현을 모시고 혜산서원이라 편액 했다. 손조서는 손처눌의 5대조이고 대구 청호서원에도 함께 배향되어 있다. 마당 왼편에 있는 단단해 뵈는 나무는 차나무다. 비각의 차나무보다 크고 별만큼의 꽃망울을 달고 있다.

◆ 옛집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고샅

[주말&여행] 경남 밀양 다원마을 혜산서원, 마을 곳곳 오래된 차나무·멋스러운 흙돌담…옛정취에 취하다
다원서당은 지금도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공간인 듯 활기가 있다. 연못을 향해 누운 듯한 배롱나무 굵은 가지 뒤쪽에 차나무 한 그루가 있다.

서원 담 너머 그득한 가지에 붉은 꽃들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 배롱나무다. 곧장 통하는 문은 보이지 않으니 총총 골목길로 나서 다음 협문으로 들어선다. 연못이 마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풀 나무가 무성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연못은 땅콩 모양이 아닐까. 연못 가운데 판석의 다리가 놓여 있고 그 너머로 '다원서당' 편액이 보인다. 서당건물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공간인 듯 활기가 있다. 배롱나무는 굵은 가지가 연못을 향해 거의 누운 듯하다. 그들이 보호하듯 막아선 자리에 차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다원마을에 오래된 차나무가 세 그루 있다고 했는데 모두 찾아낸 셈이다.

다원서당 앞 골목담 위로 아랫집의 햇빛 가득한 지붕이 가지런하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배의 난간에 선 양 담 너머로 가슴을 내민다. 배면의 툇마루에 살림들이 빼곡하다. 오래되어 물러난 서랍장과 박스들, 저 늙은 호박들과 활짝 열린 판문 속으로 대청마루의 오래된 질감 위에 동그마니 앉은 든든한 쌀 포대의 위용을 본다. 그러한 동안 담벼락에 피어난 백일홍이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시들어 가고 분꽃은 입을 꼭 오므린 채 저녁달을 기다린다. 그녀들의 하늘은 변심한 애인처럼 높고 푸르다.

쭉 뻗은 골목길은 저 끝에서 살짝 내려선다.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주목처럼 선 터가 펼쳐진다. 둥그런 나무그늘아래 꽃무릇이 바늘처럼 돋았다. 마을 공원이라 한다. 공원의 북쪽 구석에는 정자 하나가 있고 손일민 선생의 생가 터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는 1919년 안창호, 이시영,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9인의 독립운동가 중 한분이시다. 느티나무에서 마주보이는 집은 '다죽리 손씨고가'다. 담장 너머로 이제 곧 신선이 될 것만 같은 향나무가 솟구쳐 있다. 손씨고가는 영조 때 병마절도사를 지낸 손진민(孫鎭民)이 짓고, 그의 아들 상룡이 대를 이어 병마절도사가 되고 집을 증축해 '손병사 고택'이라 불린다. 문이 꾹 닫겨 있어 기대 없이 밀어보니 오오, 열린다. 그러나 눈동자만큼의 틈 속으로 살림들이 보여 가만 문을 닫는다. 손씨고가 앞 연극인 손숙의 고향집이라는 높은 담장을 따라 남쪽으로 간다. 꼭 조산(造山)같은 고목과 돌탑이 영지를 지나 연보랏빛 쥐꼬리망초와 노랑 수까치깨에 읍하는 동안 저 꾀꼬리산자락에서 나타난 일가족이 꾀꼬리처럼, 또는 냇물처럼 조잘대며 스쳐간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오른쪽 얼음골 표충사 방향 24번 국도를 타고 간다. 약 2.3㎞쯤 가다 다죽리, 산외면행정복지센터 방향을 빠져나가 곧바로 좌회전해 굴다리를 통과한 후 우회전해 약 300m 가면 왼편으로 다원마을 표지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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