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행사 준비의 우여곡절
해외에서 전통음식 구하기
언니들의 정성어린 도움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도시락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함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요즘 시대에 그런 게 과연 있을까?
올해 새스커툰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데 추석행사를 지역의 비영리기관과 파트너십 형식으로 기획진행했다. 물론 우여곡절은 많았다. 품격있는 한국문화를 선보이려고 대금연주를 기획했는데 한국에서 대금을 가져오기로 한 학생 연주자가 밴쿠버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대금을 빼앗겼다고 했다. 흉기처럼 보여서.
추석 음식의 대표격인 송편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요즘 시대 아무리 해외라도 웬만한 대도시에는 몇 개씩 있는 떡집조차 없고 가장 가까운 캘거리나 에드먼턴도 최소 대여섯 시간 운전해야 하는 거리. 그나마 배달은 안 된대서 새스커툰 한인마켓 사장님께 SOS를 청했다. 거래하는 도매상에 주문을 하면 행사일 이후에 도착인데 마침 다른 곳에서 들어온 송편이 있다며 전량을 한인회용으로 냉동보관해주셨다. 행사 당일 낮에 자연해동 몇 시간 했다가 쓰라며.
행사 사전예약이 조기품절되며 주최 측에서 160명이 사전예약했으니 130명분의 음식을 준비해달라고 했다. 한인식당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메뉴를 맞춤제작하기 어렵대서 다른 곳을 통해 한국식 통닭과 찐만두를 주문하려니 "언니" 회원님들이 난색을 표했다. 찐만두는 식으면 맛이 없고, 명절행사이니 전통적인 한국음식이 좋지 않겠냐고. 송편도 자연해동하면 딱딱하니 쪄서 참기름에 살짝 굴려야 들러붙지 않는다고.
그런데 언니들, 저 바빠요. 평일이라 다들 출근하는데 300알 넘는 송편을 찾아서 쪄서 기름에 굴려올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요! 어차피 송편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냥 해동하면 안될까요? 모르니까 더 안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이게 유일한 송편 체험일 수도 있는데 제대로 된 걸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고민하던 언니 회원님이 선택을 하라고 했다. 송편을 쪄줄까요, 잡채를 해줄까요. 그 언니는 수정과도 집에서 만들어 제공하겠다고 하신 분이다. 양심에 찔렸지만 냉큼 "잡채요" 했다. 밥은 식당에서 살까요 했더니 한인교회에서 쓰는 대형 밥솥을 빌려주면 밥도 해주겠다고 하셔서 얼른 목사님께 전화했고 오케이. 그럼 불고기 정도만 추가하면 근사한 집밥 도시락이 나오니 그 또한 본인이 준비해주겠다고. 얼른 고기 주문해드리고 양파도 같이 썰었다, 송편은 다른 언니 회원님께 도와주세요 했더니, 오전 근무 후 몇 시간 동안 여러 판 쪄서 참기름 발라 윤기 자르르하게 해오셨다.
그래서 탄생한 130명분의 밥, 불고기, 잡채, 송편 2알로 구성된 도시락. 검은깨를 살짝 뿌리는 디테일까지 살린 음식에 국립국악원의 유튜브영상에 맞추어 참가자들과 강강술래도 하고 빼앗긴 대금 대신 플루트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행사는 정말로 성황리에 끝났다. 어느 백인 참가자가 "한인회와 네가 정말로 a labour of love(사랑의 노고)를 조합한" 행사였다는 피드백을 보내왔다. 가슴이 찡했다. 진심은 언어와 문화를 넘어 통하는구나. 정작 본국인 한국에서는 명절풍습이 사라져가는 요즘. 돈 주고도 못 사는 것, 바로 사랑. 그 사랑으로 하는 일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일에, 무엇보다 내 가족에게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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