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관동·관서는 역사적 경쟁
中 베이징·상하이 서로 무시
영호남 갈등 산업화로 심해져
이제는 지역소멸 닮은꼴 걱정
민간 교류 활성화로 해답 찾길
홍석천 경북부장 |
분단으로 인해 비좁은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은 한때 망국병으로 불렸다. 뉴욕타임스, 마이니치신문 등 해외 언론들도 이러한 지역감정을 수차례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역감정이 존재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기호지역과 서북지역 간 심각한 지역감정이 존재했다. 지금의 평안·황해·함경도에 해당하는 서북지역은 농토가 척박해 양반들이 거주를 기피하는 곳이었다. 이로 인해 서북지역 사람들은 고위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수탈도 감수해야 했다. 이 같은 서북차별은 1811년 '홍경래의 난'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지역감정 문제는 꼭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웃한 일본에서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과 오사카·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 사이에 지역감정이 수백년간 존재해 오고 있다. 도쿄는 오사카 사람들을 '거칠고 예의 없고 돈만 밝힌다'고 폄하하는 반면, 오사카는 도쿄 사람들에 대해 '점잖은 척하고 깐깐하다'고 고깝게 본다.
중국도 '정치수도' 베이징과 '경제수도 상하이 간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베이징에서는 상하이 사람들을 '돈만 알고 천박하다'고 무시하고, 상하이에서는 베이징 사람들이 '실속 없이 허세만 피운다'고 깎아내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역감정은 영호남이었다. 이는 산업화에 따른 불균형 발전과 일부 정치인들의 계략이 배경이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다수론이다. 산업화가 경부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소외된 호남지역에 불만이 쌓이게 됐고, 영남 출신 대통령이 지역감정을 동원했고, 이에 대항해 호남지역 정치세력도 방어적으로 지역감정을 사용하게 되면서 갈등이 싹텄다는 것이다.
비교적 지역감정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필자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1994년 1월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자 마자 들은 말이 '또 대구놈이네'라는 소리였다. 전라도 출신이던 그 고참은 이후에도 부대와 가까운 영남 지역 후임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면회를 올 때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곤 했다. 화도 나고 속도 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를 두고 '전라도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왜냐면 그의 행동을 가장 싫어하고 가장 많이 욕을 한 것도 광주 출신의 한달 선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고참의 꼬장을 볼 때마다 "저런 XX가 전라도 사람 망신 다 시킨다"며 나를 다독거렸다. 광주 아니 전라도 사람에 대해 생길 수 있었던 편견을 바로 잡아 준 사람으로 기억된다.
사실 이제는 지역감정이라는 말은 진부해졌다. 달빛동맹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고, 옛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한 지 한세대가 훌쩍 지났다. 영호남 시·도민의 염원인 '광주-대구 내륙철도(달빛철도)' 건설도 본궤도에 올랐다.
정치와 행정이 주도하던 두 지역의 교류와 소통은 이제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영남일보와 무등일보가 주최하는 '영호남 문화예술관광박람회'가 대표적이다. 대구·광주·경북·전남의 관광산업을 소개하고, 관광교류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다.
아무리 교류를 부르짖고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집단 간 신뢰가 없으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상대방을 동반자로 믿고 경계심을 내려놓는 수준에서 이뤄지는 교류만이 상호 부정적 인식과 고정관념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번 행사가 그 시작이자 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홍석천 경북부장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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