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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커피, 그리고 이야기

2024-10-03

[문화산책] 커피, 그리고 이야기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작가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비애를 담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나라를 술 권하는 사회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 술 한 잔은 시대의 무력감에 놓여 있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아메리카노를 소울푸드라 부르며 커피를 권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따뜻한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커피를 접했다고 하는데 자유의 기운이라도 느꼈던 것일까. 훗날 덕수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 낯선 향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천재 시인 이상은 종로 1가의 '제비다방' 주인이었다. 그가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 있는 모닝커피를 앞에 두고 시를 쓸지 고민했을 법하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한다. 낯선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되자, 열매에 커피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그렇게 커피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코끼리 배설물의 원두로 로스팅한 '블랙아이보리'는 꽃 향이 좋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그런데 가격이 좀 센 편이다. '콜드블루 몰트'를 자랑하는 스타벅스는 서울에만 615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이 달달한 위상을 우리는 모른 체할 수 없을 것이다. 바샤 커피는 올여름 청담동에 첫 모습을 드러냈는데 커피 가격이 무려 1만6천원을 호가한다. 새까만 물 한 잔에 1만6천원이라니? 흡사 커피의 광풍시대로 기억될 일이다.

싸이폰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드립커피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옛 동인호텔 옆, 벽지가 화사하던 찻집 바리스타는 세월을 입어 조금 늙은 아저씨가 되었겠다. 그 자리에 피어오르던 웃음소리가 여전히 맑고 청아하면 얼마나 좋을까. '얼죽아' 이전의 우리들이 가끔은 그 벽에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커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얼죽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당분간은 '얼어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에 매몰되어야 할 모양새다.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 날은 잠을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작정하고 영화 몇 편을 몰아볼 기회가 되기도 할 터. 어쨌든 커피가 없는 세상은 무척 쓸쓸하고 말 것이다.

내일은 약속이 있다. 둘은 주변 이야기를 가끔 커피에 녹인다. '전공의' 아들을 둔 그녀의 깊은 한숨을 커피에게도 알려야 할까 보다. 시절의 하수상함을 어쩌면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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