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미인도', 비단에 채색, 114.0×45.5㎝, 간송미술관 소장 |
김홍도, '마상청앵', 종이에 옅은 색, 117.2×52.0㎝, 간송미술관 소장 |
신윤복 '미인도' 봄기운 풍기는 여인의 자태
김홍도 '마상청앵' 꾀꼬리 소리에 취한 선비
김득신 '야묘도추' 들고양이와 소동 묘사해
개관기념전 국보·유물 등 조선 대표걸작 인기
◆신윤복이 사랑한 '미인'을 만나
현재 개관기념전 '여세동보(與世同寶)ㅡ세상 함께 보배 삼아'(9.3.~12.1.)가 한창 '관객몰이' 중이다. 전시에는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40건 97점, 간송 유품 26건 60점을 선보인다고 한다. 명품 중의 명품들이다. 그 중 최고의 인기 작품은 단연코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의 '미인도(美人圖)'이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사람들은 '미인도' 앞에 몰려들었다.
한 여인이 아련한 봄기운을 풍기며 서 있다. 짙은 흑색 모발의 트레머리를 한 여인이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여 옆을 본다. 초승달 눈썹 아래 검은 눈동자가 맑고, 오목한 콧망울에 작은 입술이 꽃잎처럼 붉다. 봄바람을 타고 춘정이 넘실댄다.
신윤복은 중인 출신의 화원화가인 일재(逸齋) 신한평(申漢枰, 1735~1809)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원화가가 됐으나 신윤복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양반과 기생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는 생활상을 그려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는 그림의 주인공으로 여인을 등장시키지 않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여인을, 그것도 기생을 그림에 출연시킨 것이다. 그의 작품집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30폭에는 양반과 기녀의 풍류문화가 적나라하다. 크기가 작은 작품마다 도시감각으로 치장한 세련된 인물상들로 한양의 유흥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좁은 어깨를 감싼 저고리가 단아하다. 길이가 짧아 여린 몸매를 애틋하게 한다. 옥색치마에 붉은색 치마끈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녹색 수술의 수마노 노리개를 만지작거린다. 짧은 저고리에 첩첩이 주름 잡힌 치마는 김장철 배추속처럼 풍성하다. 또 치마 폭 사이로 살짝 드러낸 하얀 버선코는 어떤가. 요염하기 그지없다.
작은 크기의 인물만 그렸던 신윤복은, K-팝 아이돌의 대형 브로마이드 같은 '미인도'를 통해 인물화의 기량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여인의 왼쪽 상단에 제화시(題畵詩)가 있다. "화가의 가슴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資薄胸中萬華云, 筆端話與把傳神)." 여인의 춘정에 답을 하듯 화가는 '혜원'이라는 관서를 쓰고 본명 '신가권인(申可權引)'이라는 인장과 '시중(時中)' 인장을 찍었다.
김득신, '야묘도추', 종이에 옅은 색, 22.4×27.0㎝, 간송미술관 소장 |
조선시대 '미인'을 만나고 걸음을 옮긴다. 수려한 선비가 말을 타고 있는 그림 앞에 선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작품 '마상청앵(馬上聽鶯)'이다. '마상청앵'은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선비의 모습이다. 텅 빈 여백에 꾀꼬리 소리가 낭랑하다. 선비는 말을 타고 가다가 고개를 돌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쪽을 본다. 말도 멈춰 서고, 시동도 고개를 돌렸다. 꾀꼬리의 소리에 선비의 시심(詩心)이 움튼다.
이 그림은 2인 합작이다. 김홍도가 그림을 그리고,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이 그림에 답을 하듯 제화시를 지었다. 그들은 화원화가로 친한 사이였다. 우정마저 훈훈한 작품이다. 선비는 이목구비를 가는 선으로 짧게 표현했지만 준수한 얼굴이다. 인체의 뼈대를 살려 먹선을 강하게 잡고, 옷 주름은 옅게 표현하여 균형을 잡았다. 살이 붙은 말에는 사실감이 넘친다. 버드나무는 특징을 살려 가지를 하늘거리게 그렸다. 선비 쪽으로 기운 가지가 화면에 변화를 준다. 그 위에 꾀꼬리가 아래위에서 서로를 쳐다본다.
화면 왼쪽 위에는 이인문이 지은 시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佳人花底簧千舌),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韻士樽前柑一雙). 어지러운 금북(북은 베짜는 도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曆亂金梭楊柳崖), 아지랑이 비 섞어 봄강을 짜낸다(惹烟和雨織春江). 기성유수고송관도인 이문욱(이인문)이 짓다(碁聲流水館道人 李文郁證). 단원이 그리다(檀園寫)." 그림이 그윽해진다. 그림과 제시의 싱그러운 협연에 가슴이 설렌다.
◆극적으로 포착한 김득신의 한바탕 소동
산길을 벗어나자 소란스러운 초가집이 나타난다. 아내가 길쌈을 매고 남편이 자리를 짜는 중인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야묘도추(野猫盜雛)'는 대낮에 들고양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병아리를 훔쳐 달아나는 과정을 흥미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한가로운 대낮이다. 다섯 마리의 병아리와 어미닭이 마당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다. 그런데 호시탐탐 닭 가족을 노리던 들고양이가 잽싸게 병아리를 입에 물고 달아난다. 어미닭이 소리치며 날개를 펼쳐 고양이를 뒤쫓는다. 이를 본 남자가 얼른 담뱃대를 들어 고양이를 쫓는다. 망건이 벗겨지고 자리틀이 굴러 떨어졌다. 여자는 행여 다칠세라 남편을 챙기는 태세다.
김득신은 명문 화원 가문에서 태어났다. 동생에 이어, 아들도 화원화가로 대를 이었다. 그는 김홍도의 화풍을 전수받아 풍속화에 세련미를 더했다. 서민의 삶을 실감나게 그리되, 극적인 장면까지 코믹하게 연출했다.
김남희 작가 |
김득신의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에는 8점의 풍속화가 들어 있다. 대표작인 '야묘도추'와 4명의 인물이 노름을 하는 '밀희투전', 손자가 할아버지의 등 뒤에 기대어 짚신을 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는 '성하직구', 목동이 낮잠을 즐기는 '목동오수', 아들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의 모습을 담은 '주중가효', 스님들이 소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는 '송하기승', 강변에서 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해 먹는 '강상회음', 대장간을 그린 '야장단련'이 그것이다. 김득신의 풍속화는 농촌의 생활상과 도시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 한 시대의 내밀한 초상이 됐다.
'야묘도추(野猫盜雛)'를 보면, 인물의 옷 주름과 표정이 사실적이다. 마루와 기둥, 방을 직선으로 표현하여, 꿈틀거리는 인물의 날렵한 선과 대조를 이룬다. 뒷마당에서 뻗어 나온 나무가 화면의 변화를 주어 구도가 탄탄하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 화가의 순발력이 돋보인다.
대구미술관 옆 대구간송미술관 멀리 팔공산이 병풍처럼 쳐져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줄지어 전시를 관람한다. 특히 회화 작품관은 인파로 북적였다. 중앙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과 김득신의 '긍재풍속도첩'을 유리관 안에 펼쳐 놓아 줄을 서서 관람했다. 전시와 관련된 상품과 도록을 파는 상점에는 간송의 유물을 수록한 책이 인기를 끌었다. 대구미술관 옆에 위치한 대구간송미술관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아 전망 또한 명품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