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재선충에 초토화...20년 내 대한민국 소나무 멸종 우려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 초입에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이 힌 띠를 두르고 있다. 오주석 기자 |
20인치가 넘는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됐다.오주석 기자. |
지난 19일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 초입. 재선충에 감염돼 침엽이 울긋불긋 물든 소나무들이 저마다 흰 띠를 두르고 있다. 고사(枯死)를 뜻하는 흰 띠에 묶인 소나무들은 조만간 이곳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모두 재선충에 감염된 고사목으로 어김없이 벌목이 이뤄진다.
감염된 소나무 표면에는 마치 총알이 뚫고 지나간 듯 구멍이 송송 뚫렸다. 재선충의 매개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이 목질부에 굴을 낸 것이다. 개중에는 30년 이상 자라 둘레가 20인치가 넘는 소나무도 상당수 보였다.
벌목 현장에서 만난 권태영(65·안동시 당북동) 씨는 "임동면 소나무의 90%는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침엽 색상이 붉은 건 1년, 회색빛이 도는 건 3년 전에 감염돼 말라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혀를 찼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에서 벌목된 소나무들이 파쇄기로 옮겨지고 있다. 오주석 기자 |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에서 벌목된 소나무들이 손가락 크기의 톱밥으로 분쇄됐다. 오주석 기자 |
권 씨는 "이런 속도로 소나무 재선충이 확산할 경우 20년 안에 대한민국에서 소나무가 모두 없어지지 않겠냐"며 반문한 뒤 "수종 전환에 따라 소나무를 벤 자리에는 활엽수가 심어질 예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올해 1월 재선충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된 안동에선 최근 3년 사이 재선충 감염목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22년 2만4천여그루에서 불과했던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지난해 13만3천742그루로 확대됐다. 올 11월까지는 17만4천여그루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안동은 산림 면적 10만6천㏊의 51.4%가 소나무류로 분류돼 재선충 감염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다.
임세희 안동시 산림과 주무관은 "안동 임하·예안·와룡·임동면, 석동동 일대를 특별방제 구역으로 관리 중인데 대부분 면적이 넓고 경사가 급해 방제 작업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에서 벌목된 소나무들이 동산을 이뤘다. 오주석 기자 |
◆재선충 감염목 4배 늘어
소나무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의 몸을 매개로 옮겨 다니는 실처럼 생긴 선충이다. 솔수염하늘소의 성충이 소나무의 잎을 갉아 먹을 때 함께 침입해 소나무를 붉게 시들게 하면서 빠른 속도로 말려 죽게 한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100% 고사한다. 전염성도 강해 고사목 발생지역 반경 2㎞ 에 있는 나무는 모두 감염 우려목으로 분류돼 외부반출이 금지될 정도다.
전국이 소나무 재선충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대구경북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1일 현재, 산림청은 경북 경주·포항·안동·고령·성주, 대구 달성, 경남 밀양 등 7개 시·군에 재선충 특별방제 구역을 지정한 상태다.
특히 경북의 경우, 지난달 울진에서 소나무재선충이 4년 만에 재확산, 22개 시·군 중 울릉과 영양을 제외한 20개 시·군에 재선충이 퍼진 상태다. 전통 소나무 원형을 가장 잘 보존했다고 평가받는 울진 금강송 역시 재선충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경북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2022년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경북에선 지난해 총 47만6천710그루가 재선충에 감염돼 역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 2022년(11만3천 668그루) 대비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대구지역 재선충 감염 묘목은 1만1천729그루에서 5만2천171그루로 늘어났다. 올해 경북에선 39만8천915그루, 대구에는 4만3천939그루가 감염되는 등 전년과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포항·경주·안동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소나무 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5만 그루 이상 발생한 극심 지역으로 분류됐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재선충 극심 지역. 녹색연합 제공 |
경북 동해안 재선충 극심 지역. 녹색 연합 제공 |
낙동강벨트에선 달성군을 비롯해 강 건너 성주군·고령군이 재선충 극심 단계로 접어 들었다. 칠곡군과 구미시까지 광범위하게 펴진 형국이다. 안동의 재선충병 감염지대는 임하면·예안면·와룡면·임동면 등으로 펼쳐졌다.
더욱이 국내 최고의 금강소나무숲인 봉화·울진·영양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핵심 소나무 보호림까지 위협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올해 초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보다 대구경북지역 재선충 확산 상황이 전반적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며 "기존 벌목이나 훈증방식으론 재선충 확산을 막기 역부족이다. 색다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남아 있는 소나무조차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자체 방제 예산 부족 현실화
하지만 일선 지자체에선 소나무 재선충 방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선충 방제는 통상 매개곤충이 활동하지 않은 겨울에 감염된 나무를 베는 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처리할 예산이 부족한 상태다.
당장 안동에선 재선충 고사목 9만5천여본을 처리할 사업비 123억원이 부족해 산림청에 추가 국비를 건의한 상태다. 경주에선 재선충 방제사업 예산을 올해 상반기 모두 소진해 추가 발생에 대응하지 못하는 처지다.
양현두 경주시 산림경영과장은 "예산이 부족으로 재선충 발생 묘목을 적기에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매년 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하고 있지만, 확산 속도를 늦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정부 예산은 한정적 인데 반해 발행 범위는 넓어지면 방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북의 한 담당 공무원은 "아무래도 특별방재구역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다 보니 소규모 발생지는 소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방제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임재은 산림기술사는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부터 재선충 방재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한다"며 "피해 규모를 면밀히 파악하고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다 함께 머리를 맞댈 때"라고 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
오주석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