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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타임] 교육과 강요의 차이

2024-11-29

독일 미술관서 알게 된 진리
교육은 결국 스스로 깨달음
최근 대구 한 고교 강연 논란
발언·가치관에 문제 제기돼
교육과 강요 헷갈려선 안돼

[하프타임] 교육과 강요의 차이
노진실 사회부 차장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학교를 떠나서도 배움은 계속된다. 인생을 살면서 종종 깊은 깨달음을 얻는 순간, 즉 '배움의 순간'이 찾아온다. 독일 뮌헨에 있는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은 내게 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준 곳이다.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에선 뮌헨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바실리 칸딘스키'다.

칸딘스키가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된 데에는 그의 연인이었던 '가브리엘레 뮌터'의 영향이 매우 크다. 렌바흐하우스 미술관에 있는 칸딘스키의 작품들은 뮌터가 고이 보관하고 있다 기증을 한 것이다. 뮌터와 칸딘스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다뤄진 바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사이를 두고서는 칸딘스키가 꽤 '나쁜 남자'처럼 그려진다.

한 여인에게는 어쩌면 지독히 나쁜 남자,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뛰어난 선구자….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칸딘스키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의 개인사를 먼저 봐야 하는가, 작품을 먼저 봐야 하는가.

그때 미술관이 답을 주는 듯했다. "인간은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 그러니 있는 그대로 보라. 한 인간의 위대한 점도, 모순과 한계점도….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든 그것은 너의 자유."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때까지 내게 누구도 칸딘스키에 대해 선입견을 주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직접 보고, 생각하고, 깨닫고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것이 교육과 강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지식을 알려주면서도,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것. 그게 진정한 '교육'이라면, 그 반대가 '강요'일 것이다. 절대 단순하지 않은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절대적 진리인 양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강요다.

최근 발생한 '대구 한 고교 강연 중 부적절 발언 논란'을 취재하며 기자는 교육과 강요의 차이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렸다.

제보를 통해 접한 강연 당시 발언들은 기사에 그대로 싣기 민망한 것들이었다. 전체 맥락을 본다고 해도 문제는 있었고, 가치관에 공감이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 교육·입시계 유명 인사가 강한 표현을 써가며 그런 강연을 하는 것은 교육일까, 강요일까.

제보자는 기자에게 "당시 강연에 대해 비판하거나 공론화하기 힘든 상황이 며칠째 이어졌다"고 했다. 스스로의 생각과 비판을 힘들게 만든 상황…이것은 교육일까, 강요일까.

'저출산' '교육'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 쉬운 주제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출산의 경우, 그냥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주처럼 깊고 복합적인 한 존재를, 태어날 생명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세상에 내놓는 일이다. 부모에겐 생성과 소멸, 아기에겐 기쁨과 고통이 함께하는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걸 자기 가치관대로 단순히 결론 내고, 때론 거친 표현을 써가며 강조하는 것을 '출산 장려 교육'으로 착각하는 일이 되풀이될까 걱정된다.

어려운 주제에 대해 어른들이 자신의 답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은 결코 교육이 아니다. 교육의 껍데기를 쓴 강요일 뿐이다.


노진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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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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