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윤 논설위원 |
인류의 지성은 극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 뺨치는 인공지능(AI)까지 창조했다. AI는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여는 중이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정도다. 과거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퀀텀 점프'다. 알다시피 새 문명의 출현 초기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AI 문명' 역시 그렇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게 있다. AI의 대표적 특성이 '증폭기'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AI는 우리사회의 명과 암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킬 것이다.
물론, AI시대의 희망적 측면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해지고 윤택해질 수 있다. 웬만한 일상생활은 손가락과 목소리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아가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이처럼 AI는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그 이면의 어두움은 더욱 짙어질 개연성이 크다. AI가 우리사회의 부정적 측면도 극대화시킬 것이란 얘기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열일하는' AI들은 이미 수많은 일자리를 집어 삼켰다. 10년도 안돼 인간 업무의 90%가 AI와 로봇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만큼의 새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량 실업이 불가피하다. 또한 AI기술을 악용한 온갖 형태의 범죄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충격적인 위험성을 목도했다. 하지만 이는 영화로 치면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AI시대에 드리워질 짙은 그림자는 실업, 범죄 같은 비교적 단순하고 선명한 사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AI가 증폭시킬 우리사회의 가장 근원적이고 심대한 부정성은 양극화다. AI를 장악한 기술 엘리트나 자본가는 막강한 권력층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는 피지배층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AI가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유발 하라리는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는 단순히 경제적 격차를 넘어 사람 간의 계급차이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양극화 타개를 화두로 던졌다. 임기 후반기에 소상공인·청년 등 사회적 약자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방향은 맞지만 크게 새로운 건 없다. AI시대의 거대한 변화와 양극화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 보인다. 계층 격차에 대한 담론은 접어두더라도 당장 일자리 증발이 우려된다. "AI가 2년 내 세계 일자리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AI 대부 제프리 힌튼의 경고가 섬뜩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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