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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로버트 드 니로와 명태균의 공통점

2024-12-02

영화속 드니로, 시니어인턴
30년간 전화번호부 회사근무
경륜의 인턴, CEO 일급참모
명태균의 밑천도 전화번호부
일그러진 여론조사로 진화

[박재일 칼럼] 로버트 드 니로와 명태균의 공통점
박재일 논설실장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Intern)'은 제목과 달리 중년이 보기에 더 어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한다. 영화속 드 니로는 70대 은퇴자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 마침내 재취업기로 한다. 새 직장은 30대 젊은 여성 CEO(앤 헤서웨이)가 창립한 온라인 패션업체이다. 드 니로의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할까. 아무튼 그는 '시니어 인턴(Senior Intern)'으로 채용됐다. 맡은 업무도 마땅치 않던 드 니로는 CEO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면서 점차 존재감을 드러낸다. 의사결정의 고충, 부부관계의 어려움, 가정과 직장의 병립, 직원 관리까지 번득이는 중년의 지혜는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미학들이다. 어느 날 드 니로는 자식뻘 되는 CEO에게 "이곳 리모델링된 패션 회사건물은 나의 직장이었고 30여년을 근무했다"고 회고한다. 옛 직장은 바로 '전화번호부 회사'였다. 과거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웬만한 호텔이나 모텔에 가면 성경책과 함께 완전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비치돼 있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전화번호부는 그때 방대한 정보망이었다. 디지털이 되면서 사라졌다.

영화 인턴을 새삼 떠올린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 나라 정치를 온통 헤집어 놓은 명태균 스캔들이 단초다. 대통령 부부에서부터 유력 정치인들이 명태균을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평판의 잣대이자, 자칫하면 정치생명의 명운을 좌우할 태세다. 도대체 명태균은 누구인가? 이런저런 보도를 들춰보니 독특한 이력이 나온다. 명씨는 거의 첫 경력에 '전국114 전화번호부'란 회사를 창업했다는 소개가 있다. 그는 일찍이 전화번호부의 중요성을 알아챈 모양이다. 방대한 전화번호를 수집해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텔레마케팅에 활용했다. 사업이 시원찮았지만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영역에 눈을 뜬다. 전화번호 데이터는 여론조사업으로 진화했다. 명씨 사건의 폭로자이자 명씨와 함께 일을 한 강혜경씨와의 녹취 대화에 나오는 핵심적 내용도 여론조사다. 샘플 분포, 세대별 가중치, 예상 지지율을 주물러 보라는 말이 수시로 등장한다. 여론조사는 명씨의 말빨, 혹은 주술적·역술적 자신감과 함께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최대 무기였다. 대통령·서울시장 선거, 국회의원·고령군수·대구시의원 선거까지 어디든 등장한다.

명태균의 전모는 한편 불가사의하다. 그가 소유했다는 이른바 '황금폰 전화기'에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모른다는 추측에 공포심마저 자아낸다. 검찰은 명씨와 김영선 전 의원을 구속했고, 집권여당 당사까지 압수수색했다. 정치 본연의 공간이자, 공천 내막을 검찰 수사관이 들여다보는 지경이 됐다. 이렇게 하고도 명태균 스캔들의 전말이 속 시원하게 드러날까 하면 그렇지도 않을 듯하다. 황금폰과 전화번호는 이제 디지털에다 블록체인에 클라우드 저장까지 가세하며 무한정 비밀공간이 됐다. '녹취의 녹취'가 세상에 돌아다니고, 가물가물 떠들었던 과거의 은밀한 말들은 사정없이 오늘의 대화로 재연된다.

영화 인턴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공존을 암시하며 신구 세대의 융합을 깔았다. 70대 드 니로는 늘 침착하며 잔잔한 미소로 30대 여성CEO를 바라본다. 일중독에 빠진 젊은 CEO에게 경륜의 시니어 인턴은 진정한 참모다. 어깨를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린 그런 인생을 살 수는 없는 걸까. 명태균은 여론조사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당선에 몸이 단 이에게 '꽃이 피지 않은 계절이라 당선된다'는 주술적 허세를 부린다. 경륜의 참모와는 거리가 멀다. 명태균 전화번호부의 일그러진 진화가 심히 불쾌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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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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