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때 포졸들 들이닥쳐 천주교 교인 처형하고 마을 불태워
확인된 순교자 무덤 37기…살아남은 신자들 인근에 마을 재건
왜관 가실성당~한티 45.6㎞ 순례길…성지 안에도 4개 길 만들어
성모광장. 상수리나무 너머 억새를 바람벽으로 두르고 선 성모상과 큰 바위 제대 위에 고인 빛이 반짝인다. |
1868년의 순교 이후 살아남은 교인들은 '순교자들의 땅'에서 '바람맞이 땅'으로 내려와 마을을 재건했다. 현재의 마을은 복원된 것이다. |
반짝이는 것은 억새다. 억새를 바람벽으로 두르고 선 성모상이다. 큰 바위 제대 위에 고인 빛이다. 억새꽃이 반딧불이처럼 날고 눈처럼 내린다. 넓고 밝은 성모광장이다. 억새밭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 그는 성모상 앞을 지나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멀어진다. 나는 그가 나온 억새밭으로 들어간다. 장벽만큼 높은 억새밭이다. 억새밭 사이로 난 반듯한 길이 억새꽃만큼 희다. 흰 길을 마냥 내려간다. 바람과 태양은 억새랑만 놀아서 춥지도, 덥지도 않다. 흰 길이 참나무 잎으로 폭신한 숲길이 되면서 길 양쪽에 계류가 나타난다. 멀지않아 물줄기 하나가 자취를 감추고 골짜기를 메우는 먼 산들이 보이지 않을 즈음 돌아선다. 이 길은 먼 산들의 방향으로 내려가 멀리멀리 가실성당까지 이어져 있다.
'한티'는 '높고 큰 고개'를 뜻한다. 팔공산 서봉에서 가산으로 이어지는 해발고도 700m 산줄기에 자리하며 칠곡 동명면 득명리와 군위 부계면 남산리를 잇는다. 이곳은 조선 초기에 옹기굴이 있었고, 임진왜란 때는 피란처였으며, 천주교 박해 시절에는 신자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성모광장 위쪽에 그들의 마을이 있다. 집들은 모두 억새 초가이고 도처에 억새가 흔하니 마을은 억새마을이다. 억새 집은 한번 이으면 10년은 넘게 간다. 경사가 급한 두툼한 모임지붕은 비나 눈이 곧바로 억새풀 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도록 한 것이다. 창은 자그마한 벼락창이다. 창속의 사람들은 참나무와 물이 풍부한 이곳에서 옹기와 숯을 구우며 살았다고 한다.
한티에 언제부터 신자가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때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의 가족들이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을해박해 이후 형성된 본래의 한티 마을은 조금 더 높고 가파른 숲 속에 있었다고 한다. 병인박해가 한창 이어지던 1868년 늦봄,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교인들을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살아남은 교인들은 온 산에 흩어져 순교한 교인들의 시신을 찾아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땅'을 밟고 살 수 없어 '바람맞이 땅'으로 내려와 마을을 재건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 가을이 지나간 메마른 고원, 억새마을 자리다. 1900년 초 이 마을의 교인은 8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부 교인들은 일본과 만주 등지로 떠났다.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이 마을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한 동안 마을은 스러졌다. 지금 마을은 복원된 것이고 아무도 살지 않지만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와 군불을 지핀다고 한다.
십자가 광장. 높이 14m의 십자가상 오른쪽에 '한티마을사람'을 의미하는 입석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 |
십자가 광장 뒤편의 숲속에 순교자 무덤 1이 있고 여기에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이 일대가 본래의 한티 마을이 있던 곳이다. |
억새마을 뒤에도 억새밭이 넓다. 하늘만 보이는 억새밭 너머 우뚝한 건물은 영성관이다. 더러 베어진 억새밭 너머 드넓은 잔디밭을 펼쳐놓은 건물은 피정의 집이다. 피정의 집 동편에서 영성관 서편으로 긴 장막처럼 펼쳐진 숲 속에 순교자들의 무덤과 숯 가마터가 있다. 자작나무 몇 그루가 어둠을 밝히는 숲 속에서 순교자 묘 28을 보고, 또 27을 본다. 지금까지 확인된 순교자의 묘는 모두 37기다. 그중 조(趙)가롤로 가족 등 4기만 신원이 알려져 있다. 천주교에서는 이곳 신자들의 마을과 순교지를 아울러 '한티순교성지'라 부른다.
칠곡군과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조성한 '한티 가는 길'이 있다. 200년 전부터 순교자들과 교우들 그리고 선교사들이 걸었던 길을 정비해 만든 순례길이다. 왜관의 가실성당에서 출발해 이곳 한티까지 총 45.6㎞로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 등 다섯 구간으로 이어진다. '한티 가는 길'의 도착점이자 '사랑의 길'의 종착점이 '한티순교성지'다. 성지 안에는 4개의 길이 있다. 계류의 골짜기에서부터 억새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길은 '1868억새길'이다. 순교의 해인 1868을 기억하는 길인 듯하다. '겸손의 길'은 11분의 순교자 무덤을 따라 순례하는 길이다. '인내의 길'은 7분의 순교자 무덤을 따라 해발 702m 지점에 위치한 숯 가마터로 이어진다. 19분의 순교자 무덤을 따라 십자가의 길 14처가 마련된 곳은 '십자가의 길'이다.
영성관 앞에서 도로를 따라 간다. 카페 모양의 순례자 쉼터를 지나면 십자가 광장이다. 수목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드리워진 광장에 하얀 십자가상이 높다. 광장은 비었으나 가득 찬 듯하다. 동공처럼 커졌다 작아지는 광장에서 어딘가 초조해지는 낯선 마음을 느낀다. 십자가 뒤편 숲속에 순교자 무덤 1이 있다. 낙엽에 뒤덮인 봉분이 자그맣다. 여기에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일대에 본래의 한티 마을이 있었다. 골짜기 능선과 수목이 바람을 막아 시간이 멈춘 듯하다. 이곳에서 나무로 사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십자가 광장 한쪽에 돌들이 서 있다. 이들을 '한티마을사람'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마을이 존재했음이다. 두 번째는 순교하였음이다. 세 번째는 순교자의 신앙과 삶을 따르려는 순례자 자신이다. 이들 앞에 서는 일이 '한티 가는 길'의 궁극이다. '한티마을사람'의 몸에 사람들의 이름과 세례명이 빼곡히 적혀 있다. 스스로 적었는지 제각각의 서체다. 순례자들일까. '한티마을사람'의 몸에 자신의 이름을 쓴 이들의 마음을 방문객인 나는 알기 어렵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칠곡IC에서 내린다. 칠곡IC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안동방향과 칠곡중앙대로 방향으로 갈라지는 길에서 칠곡중앙대로로 우회전, 칠곡우체국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 동명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한다. 가좌교차로에서 10시 방향으로 나가 득명교차로에서 한티순교성지, 가산산성 이정표 따라 한티로를 타고 계속 오르면 된다. 가산산성야영장을 지나면 오른쪽에 한티순교성지 입구가 보인다. 주차장은 넉넉하고 주차료,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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