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비극 '12·3 계엄'
계엄에도 쓰인 '자유'
위기·불가피 동의 안돼
하고싶은대로 하는 자유
따르는 책임 감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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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 정치팀장 |
먼저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을 함께 목도한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출입처 기자로서 부끄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고백하건대 계엄 발표가 방송으로 나오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기자들에게도 사전에 통보되지 않았다. 대통령실 측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들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국회 현장에 있었던 만큼 허탈하고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감정을 눌러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부르짖던 '자유'의 의미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 '공정과 상식'으로 대표되는 인물이었다. 대선 후보부터 시작해 집권 후에도 이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유'를 특히 강조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2년간 공식 메시지에서 자유를 1천 번 이상 말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윤석열의 자유는 늘 토론 대상이었다. 잘 알려진 것은 자유주의 경제학에서 따온 자유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부친이 소개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라는 책에 감명을 받았다며 이를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자유 시민 등등 자유를 포함한 단어들도 나온 것에 비춰봤을 때 명확히 자유에 대한 개념과 가치는 알기 힘들었다. 그저 권리로서의 법상 명시된 개인의 자유에 대한 확장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12월3일 계엄 사태와 그리고 5일까지 윤 대통령이 상황에 대응한 것을 비춰봤을 때 비교적 명확해졌다. 윤 대통령은 계엄 발표 담화에서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다. 야당이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와 검사 탄핵, 예산 삭감 등 제시했지만 이를 윤 대통령의 설명처럼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도 일부 동의는 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 기도'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후에 알려진 내용이지만 계엄을 위해 필요한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의 만류에도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득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자유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한 국가적 경제·사회·외교적 후폭풍은 고려하지 않은 채 본인의 자유 의지가 더 앞섰다는 것이다. 더욱이 계엄이 실제 국회 장악 의도가 아닌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이런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계엄 선포 후 곧 국회에서 해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계엄을 했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계엄군도 시민들과 보좌진들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던 만큼 '보여주기용' 계엄은 명확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 시민들의 자유 가치를 짓밟고서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제 연대가 시작됐다. 자유 유린에 반발한 자유 연대의 움직임에 응답해야 하는 것도 대통령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탄핵이 아니라면 다른 방안이라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여당의 책임이다. 늘 그렇듯 사과와 대응은 빠를수록 좋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정재훈 서울본부 정치팀장

정재훈
서울본부 선임기자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