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경제 빠르게 변화
세계 속 문화적 위상도 급성장
정치만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되려면
民과 함께 성장하는 정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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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경북도청 팀장 |
8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 사회는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 나날이 변화하고 경제 규모도 한층 성장했다. 세계 속 한국 문화의 위상은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반면 국내 정치 상황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 지형도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르나 행태는 그대로다. 오로지 당파·계파 싸움의 연속이다. 경주마처럼 옆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린 결과치곤 너무나 덧없다. 오히려 극한의 대치는 이념·세대·남녀·계층·노사·지역 갈등만 키워냈다. 진보 정권뿐만 아니라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도돌이표다. 8년의 세월을 보냈건만 한국의 정치적 성장은 언감생심이다.
영국 유명한 화가 뱅크시의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가 묘하게 오버랩 되는 상황이다. 이 그림은 브렉시트(Brexit)를 놓고 3년간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한 영국 하원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상황도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위기를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하는 여당은 계파 결속을 더욱 다질 것이고, 기회를 잡은 야당은 여권을 더욱 몰아붙일 것이 자명하다. 폭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의 기로에 서 있건만 '친윤'은 건재하다. 한동훈 대표의 사퇴로 오히려 당내 입지는 더 공고해졌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처음부터 협치란 없었다. 여야의 다툼에 항상 뒤로 밀려나 있는 건 민생이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온 뒤에도 매한가지다. 민생은 뒷전, 당권에 이어 정권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다툼만 예정돼 있다.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경쟁은 격화할 것이다.
정치인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일까. "당은 여론을 이끌어 가야 하는 집단"이라는 여권의 한 당직자 말이 떠오른다. 그는 여론에 편승해 인기만 얻으려 하는 야당을 비판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표퓰리즘'에 메몰된 정치는 분명 바른길로 갈 수 없다. 하지만 여론을 귀담지 않는 정치 또한 정도(正道)는 아니다. 여론은 국민의 뜻이다. 국민의 옆에서 반 발짝만 앞서가면 된다. 그 이상도 필요 없다. 선민정치는 오히려 표퓰리즘보다 위험한 길이다. 국가와 국민을 한순간 파국으로 몰고 간 윤 대통령의 극단적인 행위도 선민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떠받치고 있다. 이번 긴급계엄 사태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자칫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뻔했던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살려낸 주체가 국민이었다.
지난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맞춰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집회 참여자 수만 1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광화문에서도 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북과 대구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인파다. 실천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8년 전과 비교하면 보다 성숙한 모습까지 보였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 질서 있는 외침과 배려. 민주주의를 하나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특히 K팝 문화를 대표하는 응원봉은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진화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꾸준히 성장 중인 셈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 옆에서 보폭을 맞춰 성장하는 정치, 허상에 불과한 꿈일까.
박종진 경북도청 팀장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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