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혼란의 정국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서민들의 겨울은 유독 무겁고 춥다. 비극적인 가족사와 함께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뉴스가 전해지며, 마음마저 얼어붙은 대한민국.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 이 추운 겨울, 대구 시내버스에서 '곽산타'로 불리는 곽재희 씨의 행보는 작은 불씨처럼 퍼져 가슴을 덥히고 있다.
곽재희 씨는 12년째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산타 복장을 하고 승객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특별한 버스기사다. 그가 운전하는 '706번 버스'는 단순한 대중교통 수단이 아니라 따뜻한 겨울 안식처로 변신한다.
가족과 함께 손수 세탁한 인형과 장식품으로 꾸민 버스 내부는 동화 속 장면을 연상케 한다. 수소차량 특유의 쾌적한 공기는 승객들의 얼어붙은 손끝과 마음까지 녹여준다.
버스를 탈 때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밝게 인사하며 작은 선물을 건네는 곽산타의 모습은 삭막한 일상 속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선물을 받은 승객들은 때로는 어리둥절하고, 때로는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을 나눈다.
단골 어르신들은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꽃피우며, 한때 차가웠던 공간은 어느새 따뜻한 소통의 장으로 바뀐다.
곽산타의 시작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산타 복장의 기사라는 그의 첫 등장은 이색적이고 낯설었다.
그러나 12년 동안 그가 보여준 진심 어린 행보는 동료들의 응원과 시민들의 환대로 이어졌고, 이제 그의 버스는 대구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우주교통의 추명석 대표와 직원들도 곽산타의 열정에 함께했다. 산타 복장을 한 채 동성로 거리를 누비며 캐럴을 부르고, 시민들에게 작은 선물과 미소를 건네는 모습은 대구의 연말 풍경을 더욱 따뜻하게 물들였다.
곽산타의 선행은 단순한 연말 이벤트를 넘어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기부를 망설이는가? 한국의 기부 참여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119개국 중 8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46.5%), '기부에 관심이 없다'(35.2%), '기부 단체를 신뢰하지 못한다'(10.9%)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곽산타는 증명한다. 기부는 돈의 크기나 여유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인사 한마디, 잠시 시간을 내어 건네는 배려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고 깊다.
곽재희 씨는 버스를 운행하는 마지막 날까지 산타 이벤트를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도 다양한 봉사를 하고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추명석 대표 역시 “우리는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발이 되고자 한다"며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전했다.
곽산타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작은 희망을 전한다. 대기업의 연말 기부 행사나 정치권의 형식적인 지원이 때로는 공허하게 느껴질 때, 그는 삶의 현장에서 진정성으로 빛을 발한다.
기부는 결코 크기로 평가되지 않는다. 작지만 꾸준한 실천, 진심 어린 나눔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다.
이 추운 겨울, 곽산타와 그의 동료들이 보여준 작은 온기는 단지 승객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따뜻함은 우리 모두의 심장을 두드리며 묻는다.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나누었나요?"
그 대답이 따뜻한 연말을 만들고, 어쩌면 이 나라를 조금 더 따뜻하게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한유정
까마기자 한유정기자입니다.영상 뉴스를 주로 제작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