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측근 참모들과만 소통
충성파 조언 지나치게 의존
극우 선거 음모론에도 경도
尹 대통령 지난 2년 반 행보
결국 정치적 자해로 귀결돼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
윤 대통령의 기이한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는 결국 정치적 자해로 귀결돼 지난 12월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되어 헌재 심판을 남겨놓은 상태다. 21세기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극도의 혼란과 혼돈, 그리고 분노로 몰아넣은 이번 계엄 자충수(自充手)는 그간 이면에 가려져 있던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이고 위험한 현실 인식, 김건희 여사를 포함한 '측근' 소수 집단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와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조합하면, 지지율 추락과 김건희 특검법 등으로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과 이재명의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해 국정을 마비시킨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속속 흘러나오는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당시 행적에 관한 전언과 증언에 따르면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들의 4·10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에 크게 경도(傾倒)돼 있었다는 것이다.
음모론에 빠진 윤 대통령이 일부 '측근' 참모들과만 소통하면서 잉태된 잘못된 인식의 결과물인 계엄 자충수와 윤 대통령의 지난 2년 반 동안의 행보는 집단사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집단사고(groupthink)'는 1972년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Irving Janis)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미국의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으로서, 최고의 엘리트들이 집단으로 뭉치면 얼마든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어처구니없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증상은 집단의 완전성에 대한 환상, 합리화, 외부 집단에 대한 정형화된 시각, 동조 압력 등이다. 윤 대통령의 행태는 집단사고의 전형과 정확히 일치하며 특히 충동적이고 자신과 부인에 대한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소수 엘리트 충성파의 조언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였다.
작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총선 참패 정도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국민의 일상을 흔들고 국가 신인도까지 추락시킨 계엄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를 준비하면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및 대부분의 수석비서관들조차 배제하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극히 일부 '측근' 참모들과만 소통하며, 특정 소수의 주장에 집착해 부정선거 때문에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착각, 합리화하는 집단사고에 빠진 나머지 계엄선포후 선관위를 급습하여 관련 자료를 확보하여 일거에 상황 반전을 노렸지만 결국 정치적 자해로 귀결됐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집단사고에 빠진 1차적 책임은 '소통부재'에 있었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고집, 그리고 툭하면 화부터 내는 불같은 성격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 다른 의견을 내거나, '노(No)'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더구나 윤 대통령 주변의 요직은 그의 뿌리나 다름없는 검찰 출신 인사로 다 채워져 이들의 '엘리트 의식'과 '선민의식'은 집단사고로 치닫기 딱 좋은 여건이었다.
윤 대통령의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행태와 '측근' 참모들의 집단사고에 기인한 계엄사태의 대가는 5천100만명 국민들이 오롯이 분담해 지불하게 해놓고 상처받은 전 국민에 대한 위로는커녕 계엄 이후에는 더 큰 집단인 '진영'에 의존하려는 윤 대통령의 '범 집단사고' 전략은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엘리트의 이기주의로만 보인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의식이 있고 자신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에 대한 염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제 자신과 집단을 버리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이재훈 에코프로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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