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1229010004722

영남일보TV

[박재일 칼럼] '네모난 머리'로 야유받는 한국

2024-12-30

오랜만에 만난 대사 친구
12·3 계엄, 해외 문자 세례
민주국가 한국, 도대체 왜
대행탄핵 연말 보너스까지
'네모난 머리'의 행진인가

[박재일 칼럼] 네모난 머리로 야유받는 한국
박재일 논설실장

서울 나들이를 겸해 오랜만에 연말 송년회로 동창들을 만났다. 정치외교학과 동기들이다. 1980년 5·18 비상계엄 확대조치 때 우린 대학 1학년이었다. 억압된 캠퍼스에서 민주화의 싹을 지켜보며 학창 시절을 보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감옥 갔다 온 운동권 친구도 있고, 취업해 평범한 사회생활을 한 이들도 있다. 우린 정치 얘기를 절제한다. 그래도 술잔이 오가자 마침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그는 외무고시 출신의 전문 외교관이고, 중남미 주요 국가 대사를 두루 거쳤다.

"3일 계엄하던 날 뭐했어." 내 질문에 대사 친구는 그날 따라 일찍 잤다고 했다. "자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더구만. 뉴스를 보니 계엄이 떨어졌다 철회됐고…그런데 문자 메시지에 난리가 났어. 수십개 나라에서 정치인, 외교관 할 것 없이 '당신은 괜찮냐'고 안위를 묻고, 한국은 어떻게 되느냐는 문자로 꽉 차 있었어." 친구는 "한국은 괜찮다. 아니 괜찮을 것이다. 나도 안녕하다"고 일일이 답해줬다고 했다. 괜찮다는 답장에 다들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란 회신이 다시 왔다나.

친구 말을 인용하면 한국은 해외에서 진짜 대단한 나라로 칭송받는단다. 못 만드는게 없고, 만들면 1등인 나라로 여긴다. 하긴 반도체에서 자동차, 유조선에 TV, 냉장고, 스마트폰까지 첨단 제품을 모조리 만들어내는 거의 유일한 제조업 국가가 한국이다. 전차와 전투기도 생산한다. 여기다 근년들어 '국뽕 신화'에 등장하는 BTS나 아카데미상의 K컬처, K엔터테인먼트로 치장한 문화강국으로 각인됐다. 한국 정치는 또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군중집회를 해도 경찰이 안내해주고, 확성기로 떠들어도 용인되는 민주국가다. 친구는 해외, 특히 중남미 쪽에서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을 몹시 부러워해 왔다고 했다. 그게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듯해 황망하다고 덧붙였다. 친구는 그러면서 스페인어로 'Cabeza cuadrada'를 메모지에 적었다.

그 뜻은 '네모난 머리' 혹은 '사각형 머리'라나. 스페인 계통에서 융통성 없고 완전 골통인 이들을 칭할 때 쓴단다. 남미의 독재정권, 군사정부를 꼬집을 때도 인용된다고. 당연히 조롱의 뜻이다. 이 용어가 계엄 사태를 접하며 겹쳤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이 스트레스성 뉴스를 날려도 글로벌 코리아는 자부심이었는데, 군대가 의사당에 난입하고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일이?' 란 급한 국제 문자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니 무척 당황스럽다고 했다.

우린 40년을 후퇴했는가. 난 아직도 윤석열 대통령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검사가, '총 쏘고,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라도 국회의원들을 다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검찰 공소장을 믿을 수 있겠는가. 미스터리인가 '네모난 머리'인가. '대통령 대행의 보너스 탄핵'까지 연말 선물로 받았다. 국회도 이젠 '네모난 머리'로 미쳐 돌아가는가. 눈 내리고 서리까지 내렸다. 여객기마저 제정신이 아닌 듯 떨어졌다.

'K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떠벌리기에는 상처는 깊고 넓다. 21세기 대한민국 최정예 군(軍)은 희화화됐고, 사표를 불사하며 계엄을 만류할 장관도 군인도 경찰도 우린 보유하지 못했다. 물리적 상처는 치유될 것이지만 그건 '엄정한 수술'을 전제한다. 보수를 좋아하던 법조인 지인이 말한다. "어쩔수 없다. 가혹한 처벌이 뛰따를 수밖에…내란·계엄 이런 것들을 우리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2024년 연말, 민주주의 가슴을 후벼낸 대한민국의 상흔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논설실장

기자 이미지

박재일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