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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갓바위를 오르며

2025-01-09

[영남시론] 갓바위를 오르며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생각지도 않게 주 5일 근무가 결정되면서부터다. 갑자기 주어진 하루의 여유가 혼란스럽던 차, 친구가 등산을 청했다. 코로나가 터지자 일찌감치 헬스장 대신 사람 없는 산으로 발길을 돌린 친구였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 새벽, 우리의 갓바위 산행이 시작됐다. 햇수로 벌써 5년째다.

입구에서 두부나 먹고 올 줄 알았지 갓바위를 오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예전엔 몰랐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거나 뜨지 않았거나 새벽 갓바위 등산길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중년 또는 노년의 여성들이다. 매일 갓바위를 오른다는 할머니는 갓바위에서 빌었던 모든 소원이 이뤄졌다고 자랑했다. 그러고도 남은 소원이 아직 있나 보다. 여전히 그는 갓바위를 오른다. 고시를 보는 아들을 위해 갓바위를 찾는다던 아주머니는 어느 날 변호사가 된 아들과 함께 나타났다. 아들이 직접 갓바위 부처님에게 감사를 드리러 왔다면서 수줍어하는 아들 손을 잡고 싱글벙글했다. 재수하는 딸을 위해 갓바위를 오른다는 분도 있었다. 합격 발표를 받으려면 그는 이 겨울 꼬박 갓바위를 올라야 할 것이다. 갓바위 부처님의 명성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에게서 확인한다.

요즘에는 젊은 등산객이 부쩍 많아졌다. 갓바위는 '아몰랑' 그저 '쭉쭉빵빵' '울퉁불퉁' 몸매를 한껏 자랑하며, 나의 갓바위 등산 경력을 무색하게 만들며 씩씩하고 경쾌하게 산을 오른다. 그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역시 젊음이 좋구나.

좀 다른 젊은 등산객도 있었다. 친한 동생이랑 처음으로 갓바위에 올라왔다던 후배였다. 갓바위 정상에서 만난 그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너무 힘들어요. 올라는 왔는데 도저히 못 내려가겠어요. 케이블카 타고 내려가야겠어요. 어디서 타면 되나요."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저 멀리 아득히 보이지도 않는 동봉 쪽을 가리켰던 기억이 있다.

게으른 천성에 운동이라면 질색인 내가 몇 년씩 꾸준히 새벽 산행을 나서는 게 신기한지 주위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힘들지 않냐, 건강해졌겠네, 이젠 에베레스트를 올라야지.

5년 산행 경력이면 갓바위 정도는 날다람쥐처럼 올라가야겠지만, 저질 체력의 나는 여전히 산을 오르는 것이 처음인 듯 힘들고 고되다. 금요일 새벽 폭우가 내리기를 고대하며 매주 땡땡이를 꿈꾼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더욱 그러하다.

씩씩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말을 건넨다. 다 왔어요. 그 소리를 위안 삼아 눈앞에 놓인 한 계단 한 계단과 싸운다.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과 근육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견딘다. 한 발만 더, 한 발만 더,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느새 갓바위 부처님이 보인다. 그렇게 1천365계단을 올라 정상을, 갓바위를 만난다.

처음과 달라진 것이라면 이 고통을 당연하게 또 익숙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익숙한 고통은 두렵지 않다. 그 깊이와 그 끝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렴, 산을 오르는 것이 다 이렇지.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지. 괜찮아, 곧 정상이야.

인생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루 하루 어려움을 견디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도닥이며 오르다 보면, 거기 우리의 갓바위 부처님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쯤은 들어 주마, 그런 너그러운 표정으로. 슬프고 분한 세월이지만, 산을 오르듯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야 할 2025년의 365일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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