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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삼나무의 노래'를 들으며

2025-01-09

숲의 노래로 위로받던 연말
무안공항 사고소식에 큰 충격
1차적 원인은 새떼와의 충돌
자연 세계와 대형 개발 사업
조화를 위한 인간 노력 과제

[더 나은 세상] 삼나무의 노래를 들으며
정혜진 변호사

어처구니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혼란이 한창이던 지난 세모(歲暮), 그러니까 아직 무안공항 사고가 나기 전이었다. 정치 뉴스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어두웠던 시기를 '삼나무의 노래(Song of Cedars)'라는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5분18초짜리 이 음악은 깊은 숲속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같은 소리로 시작한다. 귀를 더 쫑긋 기울이면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섬세한 소리까지도 들린다. 잠시 후 나지막하게 깔리는 허밍 소리, 그 뒤에 편안한 멜로디의 노래가 얹어지다 사라지고, 다시 숲의 소리만으로 가득 찬 채 음악이 마무리된다. 영어 가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노래를 즐기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망쳐놓은 연말을 깊은 숲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주는 이 음악으로 적잖이 위로받고 있었다.

자연의 소리를 담은 음악이 수없이 많지만 이 음악에 특별한 건 이를 만든 프로젝트 그룹의 별난 주장 때문이다. 작곡가, 작가, 과학자, 법학자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More Than Human-Moth)은 그들의 창작 활동이 '숲 안에서'가 아니라 '숲과 함께' 이루어졌다며, 음악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 주인공인 숲(에콰도르 로스 세드로스 보호림의 구름숲)을 이 음악의 공동 저작권자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에콰도르 저작권위원회에 넣었다.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겠지만, 법 제도에서 일부러 벗어난 이 실험적인 주장은 우리가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하기에는 충분하다.

어지러운 인간세계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이어폰을 꽂은 내 귀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 때 무안공항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앞으로 규명될 것이지만,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한 것이 1차 원인이 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와 늘 함께 있는 자연 세계가 인간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는 끔찍했다. 179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은 참사 앞에서 한가롭게 새들을 걱정하는 말이 아니다. 숲의 노래의 저작권을 인간과 숲이 같이 누리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그대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었을까, 그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공항 같은 대규모 개발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라는 큰 틀로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도록 되어 있다. 무안공항의 경우 인근에 철새도래지가 여섯 곳이나 있어 조류 충돌 우려가 처음부터 제기되었고, 지금에 와서야 왜 그런 곳에 공항을 지었느냐는 비난도 나오지만, 개발 사업을 할 때 그런 우려는 수많은 '대책 마련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막상 대책이라는 것도 결국 조류 퇴치, 포획 등의 방법이어서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조류 충돌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항을 짓지 않는 선택을 하기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 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유엔 지속가능개발 세부목표 중 하나인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은 개발에 앞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급진적 구호가 아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당위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습 폭우, 극단적 폭염, 해수면 상승 등으로 우리 삶이 직접적 영향을 받기에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여객기 사고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과제에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구상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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