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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
지난 주말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관람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 연극을 보는 내내 소설을 읽는 듯했다. 특히 박근형 대배우의 연기는 책 속의 주인공 '윌리'를 완벽히 재현했고, 대한민국 중장년 아버지의 고되고 회한에 젖은 모습과 닮아 있어서 마음이 짠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소재로 한 희곡이다. 한때 당당한 아버지였고, 잘 나가던 세일즈맨이었던 '윌리 노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들들에게 실망하고, 평생 일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지자 보험금 2만달러만 있으면 가족들이 편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유일한 수단으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이야기다. 연극이 끝날 무렵 관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내 '린다'는 '윌리'를 향해 "이제 주택 할부가 끝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랬나요?"라고 울부짖었다. 가족들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에 기뻐하며 기꺼이 목숨을 던진 '윌리'의 환한 마지막 모습이 린다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데 문득,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작가는 20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적었다고 한다. 작가는 '소년이 온다' 집필 준비작업을 하면서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접하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하며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야학 교사가 쓴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은 순간, 책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위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너무 멋진 질문이지 않은가. 한 번도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질문을 떠올린 적이 없으나, 어쩌면 우리는 이런저런 다양한 삶을 통해, 그리고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덕분에 경험적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소년이 온다' 집필 배경이 된 한강 작가의 위 질문이 떠올랐을까. '윌리 노만'의 희생이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느꼈던 인간성의 아름다움과 겹쳐서일까. 작가의 훌륭한 필력 덕분에 인간의 더 할 수 없는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미안합니다. 덕분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떠올렸다. '윌리'의 가족들 '린다' '비프' '해피' 역시 윌리의 죽음 앞에서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문제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국민들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과거 일본에 나라를 뺏겼을 때도, 정부가 국민을 총칼로 짓밟았을 때도 우리 국민은 꺾이지 않고 살아내었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들로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었다. 확실히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였던 것이다.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을 시작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뱀이 허물을 벗듯' 과거의 낡은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데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찬 기대를 해 본다.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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