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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의 시와 함께]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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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인

상처는 스스로 빛을 낸다고

외과의사들은 말한다.

집에 불이 다 꺼져 있어도

상처에서 나오는 빛으로

붕대를 감을 수 있다.



친애하는 독자여 나는 그저 하나의 비유를

드는 것이다. 앤 카슨 '남편의 아름다움'


결국 '쓴다'는 것은 교환의 일종이다. 캄캄한 몸의 창고에서 백열등처럼 깜빡이며 밤낮을 시연하는 마음을 온통 세계의 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종이 위로 옮겨놓는 것. 말하자면 이 공허한 세계의 우물에 마음을 동전처럼 던짐으로써 몸은 겨우 갈증을 면할 만큼의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비유'라는 화폐는 그렇게 사용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각자의 손가락 끝에서 건너간 무한한 마음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기쁨과 슬픔과 환희와 고통으로 뭉쳐진 이 거대한 현실의 반죽으로부터 유독 당신의 마음을 갈라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때문에 이 세계에서 사랑은 늘 상실일 수밖에 없지만 상실은 그 속성인 상처를 통해 또한 어둠을 가르기도 한다. 깨지고 쏟아지는 순간의 마음으로 말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빛이고 만질 수 없지만 몸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온통 어둠뿐인 밤의 한 부위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다. 그것 외에 내가 이 거칠고 메마른 세계를 끝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의 당혹스러움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침내 상처의 벌어진 틈으로 쏟아지는 아침이 있다. 전부로서의 당신이 있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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