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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시대와의 불화

2025-02-21

[정만진의 문학 향기] 시대와의 불화
정만진 소설가

연극은 지방 소도시 시장의 저택에서 시작된다. 감찰관의 도착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시장은 유지들을 모아 대책회의를 연다. 지주 두 사람이 쫓아와 감찰관처럼 보이는 사내가 여관에 머무르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내는 도박으로 돈을 다 날린 채 여관에서 밥도 못 먹으며 체류 중인 헬레스타코프였다. 시장은 사내를 감찰관으로 굳게 믿은 나머지 직접 찾아가 예의를 갖추고 그가 여관에 체불한 돈도 모두 갚는다.

헬레스타코프는 가짜 감찰관 노릇에 잔뜩 재미를 들인다. 시장 저택을 방문한 그는 시장의 아내 안나와 딸 마리아를 상대로 온갖 허풍을 떤다. 시장과 유지들은 헬레스타코프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한다. 헬레스타코프가 유지들에게 돈을 빌린다. 유지들은 그에게 돈을 빌려주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부정부패가 감찰에서 유야무야 넘어가리라 기대한다. 그러던 중 헬레스타코프는 심지어 시장의 딸 마리아와 약혼까지 한다. 시장 저택에 유지들이 약혼 축하차 모여 있다. 우체국장이 헬레스타코프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들고 나타난다. 편지에는 유지들을 비웃는 악평이 가득하다. 유지들은 헬레스타코프가 가짜 감찰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진짜 감찰관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다.

이상은 1836년 초연된 니콜라이 고골 희곡 '감찰관'의 내용이다. 지방 관리와 유지들의 악덕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감찰관'은 제정 러시아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고골은 집권층의 공격을 벗어나기 위해 로마로 피신했다.

고골은 로마에서 '죽은 영혼' 제1부를 완성했다. 사기꾼 치치코프가 백일몽에 사로잡힌 마니로프, 우둔한 욕심꾸러기 여자 지주 코로보치카, 대단한 수전노 프류시킨, 허풍쟁이 노즈도료프 등을 만나며 돌아다니는 장편소설이다. '죽은 영혼'도 '감찰관'과 마찬가지로 줄거리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에 큰 장점이 있다.

고골은 1852년 2월21일 세상을 떠났다. 불과 42세 젊은 나이였다. 고골의 사실주의 정신은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오랜 해외 떠돌이 체류는 본인의 건강을 해치는 악재로 작용했다. 지배층에 대립한 '시대와의 불화'는 그의 생애를 단축하고 말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고골의 단명이 안타깝지만, 시대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왜 그랬느냐며 그를 나무랄 수도 없다. 참된 문학의 길은 참으로 어렵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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