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영심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
긴 설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월6일자 영남일보에 실린 '세상의 모든 어머니'라는 제목의 백승운 콘텐츠·사회공헌 에디터의 글을 읽으면서, 연휴 기간에도 쉬지 않고 곳곳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살만한 곳이 되는구나 하는 고마움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글을 읽다가 문득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지 못한 분들의 연휴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서, 얼마 전 읽었던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떠올랐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아일랜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모자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판매일을 하면서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린 펄롱의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미혼모였는데, 펄롱을 임신하자 가족들은 모두 외면하였지만 여주인 윌슨은 펄롱의 어머니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일하게 해 주었다. 자식이 없던 미시즈 윌슨은 펄롱이 태어난 날 펄롱의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갔으며, 아버지 없는 어린 펄롱에게 글도 가르쳐 주었다. 펄롱이 불우한 환경에서도 엇나가지 않은 삶을 살아낸 것은 미시즈 윌슨의 그러한 호의 덕분이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 격려,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자신의 삶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던 펄롱 앞에 수녀원에서 고통받던 한 소녀가 등장하고 그 소녀로부터 도와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펄롱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망설였지만, 과거 미시즈 윌슨의 '사소한 친절'이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었음을 깨닫고는 결국 그 소녀를 구한다. 펄롱이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에서 걸어 나오면서,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어머니도 이 소녀와 같이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었기에 자신이 지금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슴 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고, 변변찮은 삶에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펄롱의 그 질문은 책을 읽는 내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지 못한 어른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시간 내서 꼭 다시 올게요'라고 약속하는 자식들이 없다. 홀로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내고, 홀로 긴 명절 연휴를 보내야 하며, 홀로 삶을 정리해야 한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가까이에 그런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남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애써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랬다면 아마도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질까 두려워 망설였던 펄롱과 같은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펄롱이 미시즈 윌슨으로부터 받았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삶을 지킬 수 있었던 것처럼,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할 일'이 없도록, 나도 누군가의 삶에 '사소한 친절'을 베풀어보고 싶다.
법무법인 율빛 대표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