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228010003485

영남일보TV

[메디컬 窓] 의료소송 합리적 사법 시스템 마련을

2025-02-28
[메디컬 窓] 의료소송 합리적 사법 시스템 마련을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낮은 비용으로 누릴 수 있게 한 K-의료의 원동력은 사실상 저임금과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궂은일까지 도맡아 했던 전공의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었다는 사실은 지난해 대부분의 의료 현장에서 전공의들이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명확해졌다. 국민도 정부도 의료계도 모두가 힘들게 버티고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법원에서 다시 한번 필수의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판결들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언론에 노출되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 한 예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이 의료사고로 사망하여 가해자와 의사에게 공동배상의 책임을 물은 판결이 있다. 의사인 입장에서 '"응급실 의사가 범죄자인가" 데이트폭력 사건 판결에 의료계 공분(25.2.7. 뉴데일리OO)'과 같은 기사 제목과 간추린 내용만 보았을 때는 의료인을 가해자와 같은 범죄자로 취급하는 잘못된 판례구나 싶었다. 하지만 판결문 전체를 살펴보니 이는 판결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료소송을 대하는 재판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밀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머리 뒷부분에 발생한 경막외출혈의 응급수술을 위해 마취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1년차 전공의가 중심정맥관 삽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다. 이때 환자의 활력 징후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에 곁에서 지도하던 2년차 전공의가 이어받아 삽입에 성공한다. 이후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낮아진 혈압을 되돌리기 위해 환자는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하였고, 부검에서 오른 빗장밑동맥에서의 대량 출혈이 사망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 판결에서 시술 삽입과정에서의 과실, 즉 주의의무 위반과 중심정맥관 시술 전 사전 설명에 사망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 외에 환자를 치료한 다른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 이유는 1) 중심정맥관 시술 시 일반적으로 동맥천자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위치에서 많이 아래쪽으로 벗어나 있었던 점, 2) 부검 결과 대량 출혈이 발생한 곳에서 동맥천자 이외에 관통상이 발생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의료행위를 하는 모든 의료인이 보호받아야 하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숙련의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수련의에 대해서만큼은 의료소송에 대한 법적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으며 더 많은 이들이 마음 놓고 수련을 받을 수 있어 이는 모두가 기피하는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시술 과정에서 부작용 혹은 고의가 아닌 실수가 하나라도 발생할 때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당사자에게 묻기 시작한다면 어느 누가 절박한 상황에 빠진 생명을 구하려는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인가.

다만 위 판결에서 가장 크게 유감인 점은 의료인과 상해를 일으킨 가해자를 공동불법행위가 있다고 판결했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따로 민형사상의 사건으로 독립적으로 처벌하고 의료인 또한 독립적으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활용하여 선한 목적으로 의료행위 중 일어난 우연한 사고에 대해서만큼은 의료사고배상제도를 통해 환자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하며 의료인에게는 사법리스크에 대한 심리적 및 물질적 부담을 내려놓고 편안한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의료소송에 있어 선한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을 보호하고 환자의 권익을 동시에 보장하는 합리적인 사법 시스템의 마련을 기대해본다.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