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 다룬 블록버스터
극초반 성취 목표 설정 없고
다른 이슈들과 뒤섞여 희석
영화적 신선함과 재미보다
계급·환경 등 주제 두드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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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
봉준호 감독의 8번째 장편, '미키17'이 베일을 벗었다. 봉준호 감독은 예전에도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 등에 외국 배우를 캐스팅한 적이 있었고, 그 중 '옥자'는 넷플릭스가 투자한 작품으로 미국 영화에 해당되는 작품이었다. '미키17'은 워너 브라더스가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첫 100% 영어 영화이자 첫 SF 영화라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에 있다. 규모도 이전까지 가장 큰 제작비가 들어갔던 '옥자'(약 560억)의 약 세 배(약 1천700억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다. '미키17'은 일주일 먼저 관객들을 만난 한국은 물론, 북미에서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든 것도, 북미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찍은 것도 최초다. 그러니 봉준호는 명실공히 한국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는 위대한 감독이다.
'미키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일명 '휴먼프린트'가 가능해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휴먼프린트'란 인간을 계속 복제해내는 기술이자 기계를 말하는데, 휴먼프린트를 통해 복제되는 인간들은 인체 실험 대상이 되거나 험한 일에 사용되기 때문에 '익스펜더블'(소모품)이라 불린다.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은 정치인 '마셜'의 얼음행성 개척 우주선에 탄 익스펜더블, 미키 반스다. 우주에서 열여섯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그에게는 여자친구인 '나샤'(나오미 아키에)와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표도 희망도 없다. 어느 날, 마땅히 죽었어야 할 미션에서 돌아온 미키17은 자기 방에 '미키18'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이렇게 여러 명의 복제인간, 즉 '멀티플'이 발각되면 이들은 모두 폐기처분되고 더 이상의 복제도 금지된다. 그제서야 미키17은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이전까지의 봉준호 영화에 비해 그 온도가 낮은 편이다. 관객수는 천천히 늘고 있는 편이며, 국내외 주요 영화 관련 웹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는 관람객 평점도 전작들에 못 미친다. 무엇보다 국내외 매체들은 '미키17'의 제작비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키17'이 아쉬운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다른 상업영화와 달리 극 초반에 매우 절실하면서도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 1/3지점에서 그러한 목표가 생긴 후에도 이 우주선의 다른 이슈들과 뒤섞여 희석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서사의 중간 부분을 주로 정치가 부부를 희화화하는데 할애한다. 무식하고 무능한데다 윤리의식이나 공감능력은 제로에 가까우며, 종종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들의 모습에는 역사상 최악의 정치인들이 고루 엿보인다. 결말부는 미키 일행이 외계생물인 '크리퍼'와 연대해 마셜 부부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시각적 스펙터클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진행된다. 느슨한 맥락에서는 모든 사건이 미키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지만,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끝까지 그가 큰 활약을 한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영화는 종종 산만하거나 흐릿하게 느껴진다. 말하자면, '미키17'은 영화적 신선함이나 재미보다는 봉준호 감독이 반복적으로 말해왔던 계급 갈등 및 동물권, 환경 등의 주제가 더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감독은 미키17처럼 조금은 모자라고 어리숙한 인물도 협조와 연대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타파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용감하고 정의롭다. 그러나 여전히, 블록버스터의 프로타고니스트로서 미키17은 아쉽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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