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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그녀의 유서는 애통하다. "내가 없는 것이 당신에게 나을 것"이라면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인식에 도달한 그녀의 생애가 비극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일 터이다.
그녀는 13세에 어머니와 영별했다. 그때 첫 정신질환이 왔다. 15세에 언니, 22세에 아버지가 죽었다. 24세에 오빠도 죽었다. 계속되는 죽음 속에 놓인 삶은 끝내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놓았다. '웬만하면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야!' 하릴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녀의 마지막 글을 읽어본다. "내가 다시 미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아요. 끔찍한 시간들을 되풀이할 수는 없어요. 기이한 목소리들이 다시 들려오고, 집중력은 아주 사라졌어요.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당신은 내가 받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주었어요. 내게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는 견딜 수가 없어요. 계속 당신의 삶을 망치면서 내가 살 수는 없어요. 내가 없는 것이 당신에게 낫다는 사실을 알아요. 아, 나는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빚지고 있어요. 당신은 지극정성으로 나를 대해주었지요. 이 말은 꼭 남기고 싶어요. 아무것도 내게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신의 상냥함만은 굳건히 남아 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는 처절한 실존이 깃들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식으로 그녀를 낭만의 화신인 양 해석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우리가 가벼운 것은 박인환처럼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잡지처럼 통속하다는 표현을 보며 '나는 통속하지 않아!'라고 자위하는 허위의식 탓이다. 사람다워지려면 '등대로' 가려는 의지를 가슴 깊이 지니고 살아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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