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빨리 대피해야 해요!”…인도네시아 선원의 ‘불 속 의인’ 활약

불길에 도로 막히자 직접 등에 업고 방파제까지 피신시켜
동네 주민들 “수기안토가 10여명 이상 목숨 구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경북 영덕군 해안마을까지 번진 지난 25일 밤, 한 외국인 선원이 몸을 아끼지 않고 마을 주민들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수기안토(31) 씨. 8년 전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한 그는 경북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에서 대게잡이(자망)선원으로 일하고 있다.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25일 오후 11시쯤 수기안토 씨는 마을 어촌계장인 유명신(51) 씨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주민 대피에 나섰다.

거센 산불속에 15명의 마을 어르신을 구한 수시안토씨(우측 흰모자)와 유명신 어촌계장(오른쪽 검은모자)이 31일 함께 불에 탄 마을을 살펴보고 있다

강풍을 타고 산불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지체 없이 집집마다 뛰어다니며 “불이 났다", “빨리 대피해야 한다"라고 외치며 잠자리에 든 주민들을 깨웠다. 특히 마을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수기안토 씨와 유 씨는 화마가 미친듯 널뛰는 불길 속에서도 80~90대 어르신들을 직접 등에 업고 약 300m 떨어진 방파제까지 달려 대피시켰다. 당시 두 사람이 구한 주민은 15명이었는데 수기안토씨 혼자서 10명을 대피시켰다.

수기안토 씨는 “그 순간엔 그저 빨리 할머니들과 주민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불이 바로 눈앞까지 번졌을 땐 정말 무서웠지만, 어르신들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90대의 한 주민은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불이야',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수기안토가 와 있었고 그의 등에 업혀 나왔다"라며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다 죽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수기안토 씨는 인도네시아에 5살 아들과 부인이 있는 가장이다. 8년째 수기안토를 고용하고 있는 유 씨는 “함께 오래 생활하다보니 가족같은 친구"라면서“산불피해가 많다며 눈물까지 흘렸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거센 불길속에 10여명의 경정 3리 주민들을 등에 업고 대피시킨 수기안토 씨

착한 심성을 가진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도 신망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하다. 그는 “한국이 너무 좋고 이곳 주민들은 정말 가족 같다"라며 “고향에 있는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도 평소 궂은일 마다 않는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

주민들은 “수기안토와 어촌계장이 없었으면 마을에 큰일이 났을 것"이라며 “이렇게 믿음직하고 따뜻한 청년과 앞으로도 함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한편,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는 약 80가구에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주민 6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해안마을이다. 주민 중 60대 이하는 10명에 불과하다. 산불이 닥친 25일 주민 모두가 무사히 대피했지만 이중 30가구는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엔 '영웅' 수기안토 씨 덕분에 인명 피해 없이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남두백 기자 dbn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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