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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산불 의인' 길안면 백자리 배정훈씨, 물 채운 분무기로 화마 맞서…나홀로 이웃집 6채나 지켜내

2025-04-01

불 번지는 집집마다 물 뿌리고

급한 상황엔 담장 뛰어넘기도

4시간 동안 처절한 사투 벌여

안동 산불 의인 길안면 백자리 배정훈씨, 물 채운 분무기로 화마 맞서…나홀로 이웃집 6채나 지켜내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에서 홀로 화마와 사투를 벌이며 마을 주택 6채를 지켜낸 배정훈씨.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불이 났는데, 너 집 내 집이 어디 있습니까? 불이 보이는 곳마다 쫓아가 SS기(농약살포기)로 물을 뿌리며 불을 껐지, 그냥 불 끄는 게 먼저였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처음 안동을 덮쳤던 길안면 백자리. 그 현장에서 불이 지나갈 때까지 끝까지 남아 마을을 지킨 배정훈(59)씨.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홀로 화마와 사투를 벌이며 6채의 가옥을 지켜낸 그가 전한 생생한 그날의 이야기다.

의성 산불이 길안면 백자리를 덮친 것은 지난달 24일 오후 8시쯤. 배씨는 당시 산불이 마을 인근까지 근접했다는 소식에 면사무소 직원, 마을 이장과 함께 노인 등 마을 노약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마지막 한 명까지 대피시설로 옮긴 배씨는 혹시나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이 더 있는지 살피러 또다시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곧이어 화마가 들이닥쳤다. 의성 안평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과 인접한 의성 옥산면에 이어 길안면 백자리를 강타한 것이다. 배씨는 앞서 자신의 집에 불이 붙으면 바로 끌 생각에 집 마당에 있던 SS기에 물을 채워둔 상태였다. 그는 곧장 불길을 향해 SS기에 채워둔 물을 뿌리고, 마당에 호스까지 꺼내 들었다. 긴 호스를 끌고 불붙은 옆집 담장까지 뛰어넘기도 했다.

불길이 마을 전체를 태우고 지나간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그 시간 동안 그는 마을에 홀로 남아 화마와 사투를 벌인 것이다. 한마디로 목숨을 내놓은 처절한 싸움이었다. 바보스러울 정도 무모했지만 거센 불길과 맞서 그가 홀로 지켜낸 집은 마을 주택 11채 중 6채에 달했다.

배씨는 "불길이 너무 거세 엄청 뜨거운 데다, 숨쉬기조차도 힘들었다"며 "위험하긴 했지만, 정말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집 앞 개울에라도 뛰어들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풍이 불어 불길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데, 혹시라도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고, 불타는 집을 마주하고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은 그는 숨을 돌리기도 바쁘게 등짐펌프에 물을 채웠다. 마을을 할퀴고 간 산불이 늦은 밤, 윗마을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홀로 불길을 막아섰던 배씨. 이번 불길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온몸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26일과 27일 이틀간 화마와 싸우며 마을을 지켜낸 것이다.

배씨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당시엔 무조건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긴 하지만, 그가 있었기에 마을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그래도 재난 상황에선 자신의 안위도 생각하면서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격려했다.

글·사진=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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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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