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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곽훈 화백은 여든살이 넘은 지금도 매일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올해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은 '할라잇' 시리즈로 미국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피앤씨갤러리 제공〉 |
그림 붙잡고 산 반평생을 생각해 보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선험'적인 것
진취적인 아방가르드협회 창립했지만
기성 화단 구태에 결국 혼자만의 길로
좌익 집안으로 고초…쫓기듯 미국행
동양철학 모티브 시리즈 반향 일으켜
고래·암각화 영감 받아 작품 몰두 중
◆실험미술 진취적 활동 '최초'
그의 인생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따라 붙는다. 1970년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 '전자예술 전람회'를 개최했다. 20대의 젊은 작가는 당시 누구도 시도한 적 없던 생경한 풍경을 전시장에 펼쳐 놓았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 바르톡의 '현과 타악기, 첼리스트를 위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현란한 조명이 전시장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음악과 조명 등 여러 매체들이 일으키는 공명과 균열의 퍼포먼스로 한국 화단에 새로운 서막을 열었던 것.
"남들이 하지 않은 독특한 뭔가를 하고 싶어서 내 딴에는 큰 돈 들여서 퍼포먼스를 시도했는데, 관객도 비평가도 없이 완전 썰렁했어요. 지금이야 '최초의 시도'라며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답니다."
그의 진취적 활동은 실험미술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역사가 되었다. 그는 1969년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그룹)'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AG그룹은 서울대, 홍대 미대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기성 화단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고, 혁신적인 새 시대의 기수가 되려는 취지로 결성했다.
"AG그룹이라는 이름을 제가 직접 지었을 만큼 애정을 갖고 의욕적으로 활동했는데, 녹록지 않았어요. 작가들을 자기들 뜻대로 통제하려는 일부 선배와 교수 등 기성 화단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결국 AG그룹을 떠나 혼자만의 길을 걷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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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화백은 여든살이 넘은 지금도 매일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그가 작업실에 있을 때면 반려견 '번개'가 곁을 지킨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
어린시절 외삼촌은 곽 화백을 유난히 이뻐했다. 틈만 나면 곽 화백을 무등 태우고 영화관도 가고 동네 산책도 했다. 하지만 곽 화백에게 그토록 큰 사랑을 준 외삼촌은 6·25전쟁의 와중에 좌익으로 몰려 가창골에서 총살형으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한국인 대다수에게 전쟁이 큰 상처로 남았듯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요. 집안에 좌파가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경찰이 쳐들어와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상검증을 한다면서 사회활동에 제약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가 1975년 한국생활을 청산하고, 쫓기듯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게 된 이유다.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비행기에 올랐던 그에게 전화위복이었을까. 미국사회는 동양에서 온 전도유망한 작가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동양철학인 성리학을 모태로 한 '기' 시리즈, 삶과 죽음 또는 생명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적 흐름을 그린 '겁' 시리즈, 그리고 찻잔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다도와 선의 세계와 연결시킨 '다완' 시리즈 등이 미국사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무렵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학교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함께 공부한 학우들이 키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한번은 과제를 제출했는데, 교수님이 제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해서 600달러에 판매도 했어요. 이 일로 학교에서 유명해지기도 했죠. 미국생활은 궁핍하고, 힘겹기도 했지만 그만큼 가능성과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었어요."
◆구작 판매 중단 선언 '피날레 고민'
여든이 넘은 요즘에도 곽 화백의 기상시간은 매일 새벽 4시, 동네에 있는 대중목욕탕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는 날이 많다. 이른 새벽 몸을 씻고난 뒤에는 집으로 돌아와 반려견 '번개'와 함께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한다.
요즘 그의 관심은 '원시적 고래잡이'에 머물러 있다. 알래스카 여행에서 경험한 고래 뼈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아 강렬한 붓놀림으로 형상화한 '할라잇(Halaayt)' 시리즈에 몰두하고 있다.
"한번씩 깜짝 놀라는데, 나이가 여든이 넘으니까 여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제 평생 사용하지 않은 흰색을 쓰게 된 것도 놀라운 변화에요. 7월 샌프란시스코, 9월 로스앤젤레스(LA) 등 올해 미국 전시도 계획 중이에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볼려고요."
격변하는 인공지능(AI) 시대, 예술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에 대한 곽 화백의 입장은 매우 심플하다.
"예술가는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는 사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새로 만드는 사람이에요. 앞으로 AI가 예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궁극적으로 예술만이 살아남아 인류에게 치유와 힐링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예술가의 창작혼만큼은 따라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런 가운데 작가는 최근 활동 초기에 작업한 구작들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돈을 아무리 줘도 예전 작품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생각하기 싫지만 나이가 있으니 피날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아무래도 제 작품을 후손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중요한 것은 작품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일단 구작들의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찬찬히 앞으로 갈 길을 고민해봐야죠."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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