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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간은 덜컹거리면서 흐른다

2025-05-19

사회갈등과 패권국가 횡포

시간이 퇴행하는 지금 현실

국민들의 의지와 행동으로

힘든 세월을 잘 이겨냈다는

뿌듯한 기억이 남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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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진 대구대 총장
매번 지나던 길에서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시끌벅적한 사건이나 사고가 벌어지면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게 된다. 되풀이되는 일상 중에 특출한 경험을 한 날은 오래 기억되고 각별한 의미로 남는다. 특출한 사건만 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벽에 걸린 시계 소리가 유독 성가실 때도 있다. 뒤척이며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한 번쯤 경험해본 일이다.

요즘처럼 볕이 좋고 신록이 한창인 봄날에 필자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헐레벌떡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에게 오늘 아침 등굣길에 기억에 남는 풍경이나 장면이 있는지 물어보곤 한다. 물리적인 시간은 세상사와 상관없이 균질하게 앞으로 흘러가겠지만 우리네 시간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우리네 경험과 기억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며 시간을 보내고 우리가 기억하는 일들은 저마다 들쭉날쭉하다. 아침에 길을 나서 일터나 학교로 가는 길에 눈길 준 일이 있거나 특출한 사건이 있다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세상사가 어수선하다 보니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잦아진다. 현대사회가 워낙 복잡다단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 전대미문의 사건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다. 워낙 인간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자극과 상황에 집중하도록 진화해온 터라 웬만한 자극에는 습관화되어 반응하지 않는다. 자극에 대한 역치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세상사는 여간해서 무심하게 있기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영화 같고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 세계에서 연일 되풀이되고 있다.

국제 질서가 격랑에 휩싸이며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패권국가의 횡포가 공공연해지고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다니는 말 그대로의 전쟁이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국내 상황도 뒤지지 않는다.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데 마땅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사회적 약자의 삶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사회 집단 간의 갈등이 분열과 적대로 이어져 사회 통합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현실 정치가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여 드라마가 재미없다고 오히려 외면받는 지경이다. 진짜 문제는 현실의 그 드라마가 막장이라는 것이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과 무관한 단순 구경꾼은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이 반전을 거듭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장차 이어질 일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안타깝게도 눈앞에 드라마가 남의 일이 아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를 할 수는 없다지만 정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자명하다. 누군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지만 누군가는 분노하며 행동한다. 앞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퇴행하는 현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힘든 시간이 유난히 길다.

우리 국민 모두 어수선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여러 일들이 엉망진창이다. 이 모든 혼란이 한편의 에피소드이고 내 삶과 무관한 구경거리였으면 하는 불가능한 소망을 갖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그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현실의 시간은 저마다의 빠르기로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막연히 기대할 수만은 없다. 세월이 지나고 오늘을 돌이켜보게 될 때 우리의 의지와 행동으로 힘든 시간을 정말 잘 이겨냈다는 뿌듯한 기억이 남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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