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519010001332

영남일보TV

[월요메일] 厚顔無恥(후안무치) : 부끄러움을 모르는 삶

2025-05-19
2025051901000149100013321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tvn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은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갓 전공의가 된 청춘들이 실수와 고민을 거치며 어엿한 의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은 2020년과 2021년에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로, 현실적인 병원 풍경과 인간관계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각 인물의 성장 서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도 '폭싹 속았수다'의 학씨 아저씨에 버금가는 빌런이 존재한다. 바로 종로율제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들에게 부당한 업무를 전가하며, 전화 지옥과 같은 괴롭힘을 일삼는 산부인과 펠로우 명은원(김혜인)이다.

명은원은 이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산부인과 치프 레지던트로 등장해 동료 추민하에게 힘든 일은 떠넘기고 좋은 일은 독차지하는 얌체 캐릭터로 악명을 떨쳤다. 시즌이 바뀌고 병원이 달라져도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명은원은 자신과 산모의 관계를 위해 무리하게 수술방을 잡아 오이영(고윤정)과 마취과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고, 2회에서는 근무 시간에 수시로 비상 연락을 받지 않다가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다른 수술이 있었다'는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다 들키기도 한다. 6회에서는 후배 구도원이 주도한 논문에 자신만 제1저자로 올리는 등 논문 도둑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염치도 없이 능청스럽게 거짓말로 핑계를 대는 명은원은 후안무치(厚顔無恥), 즉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상 그 자체를 보여준다.

정치학자 라스웰(Harold D. Lasswell)은 '정치적 인간'의 특징으로 "권력형 인간들은 우리(Us)가 아닌 나(Me)의 가치를 추진하는 데 골몰하며,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 지향성, 강한 자기 중심성, 그리고 편향된 역사관은 정치적 인간의 대표적 속성이다. 명은원은 철저히 교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권력 지향적 인물로, 객관성과 합리성을 무시한 채 극단적인 이기심과 편향된 가치관으로 주변을 괴롭힌다.

시청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건, 이런 후안무치한 인물이 오히려 운이 좋아 승승장구한다는 점이다. 주변 인물들은 그의 횡포에 침묵하고, 오직 오이영만이 소심한 방식으로 저항할 뿐이다. 9회에서 종로율제병원에 방송 촬영팀이 방문하여 마침 방송의 기회를 잡은 명은원은 두 얼굴의 민낯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근무 시간에 백화점에 있다가 우연히 돕게 된 산모에게 신뢰를 얻고자, 위험성을 무시하고 오이영에게 자연분만을 고집시킨다. 그러나 결국 아기의 맥박이 떨어지자, 오히려 오이영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카메라 앞에서 꾸짖는 모습은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명은원 같은 인물이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실제 병원, 회사, 학교 등 다양한 조직에서 명은원 같은 인물은 흔하다. 힘든 일은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다른 사람의 성과는 가로채며, 공은 독차지하고, 권력에만 아부하는 이기적인 후안무치 인간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이들의 결말은 대개 비슷하니, 너무 걱정은 말자.

부끄러움도 없이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으로 제한된 새로운 대선 후보 등록 시간에 맞춰 입당 서류와 함께 32가지 서류를 들이밀며 남의 성과를 가로채려 했지만, 결국엔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이에게 외면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후안무치한 인간들은 조롱과 냉소 속에서 퇴장하게 될 것이다.
이희정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