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통일의 꿈 품고 서라벌로 가는 길, 막걸리 한잔에 근심을 털다
남호해수욕장은 영덕 블루로드 D코스인 '쪽빛 파도의 길'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8개 코스 중 2번째인 '특별한 게, 대게' 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수욕장 끝자락의 자그마한 남호리 마을을 지나 남정천을 건넌다. 천에는 단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탄탄한 인도교가 놓여 있다. 천과 바다와 모래밭과 갯바위가 어우러진 하구에는 세상의 모든 갈매기가 모인 듯하다. 동해를 앞마당으로 가진 횟집을 지나 7번국도 동해대로에 오른다. 뚜벅뚜벅 몇 걸음이면 어느새 남정면이 끝나고 강구면 삼사리가 시작된다. 삼사리, 해안산책로, 대게마을, 세 개의 간판이 나란히 가리키는 해안길로 내려선다.
강구항 지척에 두고 오포교 건너면
태조왕건 경주 행차길 휴식 취한 곳
블루로드 '특별한 게, 대게길'로 이어져
100년 전통 강구시장 정겨운 장날 풍경
막거리 손에 쥔 왕건 스토리에 눈길

100년 넘게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강구시장. 강구시장 바로 옆에 강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한다. 이곳이 영덕블루로드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의 종점이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은 강구대교로 이어진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하는 삼사리
저기 바다로 뻗어나간 것은 삼사리 해상산책로다. 총 길이 233m로 2011년 4월에 준공했다. 하늘에서 보면 은행잎 같기도 하고 소심하게 펼친 부채 같기도 하다. 산책로 따라 쪽빛 파도 위를 성큼성큼 걸어본다. 발아래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바다다. 먼 수평선이 동공 가득 망망히 들어차고, 뒤돌면 바다를 향해 창을 낸 삼사리의 집들과 크고 작은 가게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삼사 방파제 앞 쉼터 정자 곁에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최불암, 박상원, 최진실, 차인표, 송승헌 등이 출연했던 1997년 드라마다. 선장인 아버지와 도시로 떠난 자식들의 신산하고 팍팍한 삶을 진한 가족애로 표현했던 묵직한 드라마였다. 최불암이 연기한 캡틴 박의 직업이 대게잡이 어선 선장이었음을 기억해 내고는 흐뭇해진다.
맞은편 골목의 삼사길 따라 삼사해상공원을 향해 오른다. 삼사(三思)는 세 번 생각한다는 뜻이다.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는 의미다.
옛날에는 삼시랑(三侍郞)이라 했다 한다. 신라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숨어 지냈다고도 해서 생긴 이름인데, '삼시랑'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삼사'가 됐다고도 한다. 조선 연산군 때의 기록에는 삼사랑(三士郞), 정조 때의 기록에는 삼사랑(三思郞)이다.
여기에 세 명의 화랑(花郞) 이야기도 전해진다. 명승 절경을 찾아다니며 수련하던 영랑, 술랑, 남석랑 세 화랑이 영덕 재궁산에 머물며 수련했다는 전설이다. 그들 세 화랑을 삼선랑(三仙郞)이라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삼시랑으로 변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옛 재궁산이 지금의 삼사해상공원이다. 망망대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과연 삼시랑을 쉬이 상상할 수 있다.

왕건이 방을 걸고 하룻밤 묵었던 강구면 오포리 나비산. 괘방산이라고도 불린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싱그러운 솔밭 너머 가늘게 반짝이는 오포해변
삼사해상공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어촌민속전시관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총총 내려서면 강구해안길이다. 길보다 낮은 집들이 늘어선 해안길을 따라가다 자그마한 모래사장을 만나면 오포리가 시작된다. 대개 강구면의 행정중심지를 강구라 여기기 쉬운데 아니다, 오포다.
오포리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수군이 주둔하던 '오포포'로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군사기지였다고 전한다. 현재 강구면사무소 북쪽에 문전옥답으로 펼쳐져 있는 오포들이 옛날 오포수군 만호진터라고 한다. 싱그러운 솔밭 너머 오포해변이 가늘게 반짝인다.
솔숲을 헤치고 해변으로 나서면 넓게 트인 바다 건너 강구항이 지척이다.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 번쩍 눈에 띄는 강구항을 바라보며 오포교를 건넌다. 정면에 나지막한 산이 누워 있다. 나비의 날개를 닮았다는 나비산이다. 괘방산(掛榜山)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태조 왕건이 방(榜)을 걸고 하룻밤을 묵었다는 산이다.
후삼국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의 일이다. 930년 1월, 왕건은 안동의 병산전투에서 후백제 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도움을 준 이가 재암성(현재 청송일대) 성주 선필(善弼)장군이다. 이 소식이 서라벌까지 전해지자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선필장군을 통해 왕건에게 서라벌을 방문해 줄 것을 청했다. 마침 동해안 일대의 110여 개 주, 군, 현이 모두 선필장군과 안동지역 성주들의 노력으로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왕건은 경주로 가는 길을 확보하게 된다.
7번국도 영덕구간은 삼국시대부터 경북 동해안 일대 교통의 중심지였다. 신라 소지왕은 487년에 역로를 처음 개설한 후 각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교통망 개설과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삼국 통일 이후에도 신라는 중앙의 정령과 군수물자, 생산물 등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말과 마차 운행이 가능한 역로 정비와 개설을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삼았다. 그렇게 개설된 경주 중심의 교통망이 북해통, 염지통, 동해통, 해남통, 북요통 등 5개 대로다.
이 중 영덕은 경주에서 강릉을 연결하는 북해통에 속해 있었다. 당시 동해안의 중요 생산물이 북해통을 통해 경주로 운반되었고 대조영의 발해와도 연결되어 수많은 사신이 오갔다고 한다. 신라의 화랑도들도, 왕건도 이 길을 이용했으리라 추측된다.
왕건은 931년 2월, 최정예 기마호위병 50명을 이끌고 안동과 영양, 영해를 거쳐 남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고려수군을 강구항과 오포포로 보내 사전 준비도 마쳤다. 왕건이 영덕 자부티 고개를 넘을 즈음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경주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왕건은 영덕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왕건이 방을 걸고 하룻밤 묵었던 그곳이 바로 강구면 오포리 나비산, 즉 괘방산이라 전한다. 이후 왕건은 경주를 방문해 한동안 머물렀고 4년 뒤인 935년 신라를 복속하게 된다.
◆ 강구대교 입구에서 왕건을 만나다

영덕 태조왕건 동상과 수헐장터. '수헐(愁歇)'은 '나의 근심을 없애 주었다'는 뜻으로, 왕건이 역리 황씨가 지고 온 막걸리를 마시고 피곤함과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렸다는데서 유래한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오포교 건너 7번 국도를 따라 강구파출소를 지난다. 도로 건너 괘방산 아래에는 1935년에 개교한 강구초등학교와 1919년에 개설된 강구시장이 있다. 100년 넘게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강구시장은 원래 3일과 8일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이었지만 2003년도에 시장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설시장 겸 오일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종 해산물과 활어회, 농산품, 생필품 등을 상시 판매하고 있지만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것은 역시 영덕대게다. 강구시장 바로 옆에 강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한다. 이곳이 영덕블루로드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의 종점이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은 강구대교로 이어진다.
강구대교 입구에서 황금빛 왕건을 만난다. 그가 손에 쥔 것은 막걸리다. 이 조형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왕건이 넘었다는 자부티 고개는 영덕읍 매정리와 축산면 고곡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 115m의 고개로 현재 7번 국도가 지난다.
자부티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왕건이 말안장 위에서 졸며 고개를 넘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졸면서 넘는 고개라 '면현(眠峴)'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왕건의 행차 소식은 영덕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는 화수리의 주등역(酒登驛) 책임자로 있던 역리(驛吏) 황씨(黃氏)의 귀에도 들어갔다. 황씨는 왕건이란 인물이 무척 궁금했다. 빈손으로 찾아갈 수 없었던 황씨는 집으로 달려가 막걸리 단지를 통째로 짊어지고는 자부티 고개로 향했다. 졸며 고개를 넘던 왕건은 황씨가 지고 온 막걸리를 벌컥 마시고는 피곤함과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왕건은 황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던 근심을 모두 풀어 주었으니 앞으로 너의 이름을 '나의 근심을 없애 주었다'는 뜻의 '수헐(愁歇)'이라고 하라!" 이렇게 역리 황씨는 '수헐'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막걸리도 '수헐'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영덕의 막걸리 '수헐'은 근심을 없애주는 술이라 하여 영덕은 물론 인근 고을까지 각처로 팔려나갔다고 전한다.
오늘 왕건의 술병은 비었고 그의 어깨너머로 대게 찌는 냄새 흔전만전하다.
글= 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포항시>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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