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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실명계좌 제도, 이제는 폐지해야 할 때다

2025-06-17 14:26
설기환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 협회장, (주)한국디지털거래소 준법감시인>

설기환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 협회장, (주)한국디지털거래소 준법감시인>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원화마켓을 운영하려면 은행으로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좌(이하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하는 의무가 부과됐다. 이 제도는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및 가상자산 관련 리스크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일정 부분 시장질서 정착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 3년이 지난 현재, 이 제도는 정책적 실효성을 상실하고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실명계좌 발급 여부는 현재 전적으로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으며, 금융당국은 은행의 경영 자율성과 가상자산 시장 리스크 관리 등을 이유로 정책 개입을 자제해 왔다. 이로 인해 실명계좌를 확보한 소수의 대형 거래소에 시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독과점 구조가 고착돼 현재 국내 원화 거래의 95% 이상을 상위 두 거래소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독과점 구조는 단순히 경쟁의 문제를 넘어 가상자산 시장 전체의 리스크 집중이라는 더 큰 문제로 연결된다. 특정 대형 거래소에서 해킹이나 장애가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은 곧바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 전체의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비자 권리 침해 문제도 있다. 실명계좌 제휴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투자자는 원화마켓 접근이 제한되며, 이는 사실상 특정은행을 강제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결국 금융소비자의 선택권과 접근성이라는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울러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비원화 거래소는 법규에 따른 사업자 신고 요건을 충족하고 있음에도 은행과의 연계를 확보하지 못해 퇴출되는 악순환에 직면해 있다.


자금세탁방지 효과도 제한적이다. 은행의 실명확인은 본질적으로 예금계좌 차원의 통제에 불과하며, 가상자산사업자 및 가상자산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까지 관리할 수는 없다. 최근 공시된 FIU검사 및 제재 사례는 자금세탁 리스크 관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명계좌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거래자(고객)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시점이다. 고객이 자신이 원하는 은행계좌를 자유롭게 선택해 거래소와 연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금융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방지의 본질적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실명계좌 보유 여부가 아닌 가상자산사업자의 AML시스템, 보안성, 이용자 보호체계 등 실질적 능력을 기준으로 사업자 신고 및 갱신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은행과 거래소는 각자 고유 리스크에 대해 이원적 위험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은행은 고객확인 및 자금흐름 통제에, 거래소는 고객확인 및 가상자산 거래 통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은행과 가상자산사업자에서 발생하는 AML 리스크가 상호 전이되지 않는다.


실명계좌 제도는 국제 기준에서도 거리가 있다. 주요 국가에서는 은행계좌 연계보다는 VASP 자체의 AML능력, Travel Rule 관리 및 내부통제 체계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의 규제 체계는 글로벌 가상자산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한국 기업을 뒤처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명계좌 제도를 폐지하고, AML 능력 기반의 승인 및 감독 체계로 전환할 경우 △실질적 역량 기반의 공정경쟁 유도 △독과점 해소 기반 마련 △혁신적 사업자 진입 촉진 △은행과 거래소 간 리스크 전이 차단 △제도 신뢰도 및 시장 투명성 제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금세탁방지'라는 규제 목적은 거래소의 실질적 리스크 관리 능력과 감독당국의 검사 및 관리 역량에 의해 달성돼야 하며, 실명계좌 여부가 이를 대체할 수 없다. 이제는 거래소 중심의 AML 구조에서 이용자 중심의 개방형 금융시스템으로 전환할 때다. 실명계좌라는 국내 독자적 규제의 틀을 넘어 글로벌 흐름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가상자산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설기환 <한국자금세탁방지전문가협회 협회장, (주)한국디지털거래소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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