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현 시인
올해 1월 한반도의 등뼈가 연결되었다. 포항에서 삼척까지 동해중부선 철도가 개통된 것이다. 이 구간에 새로 생긴 생소한 역 이름은 귓가에 한번은 스쳤던 지명들이다. 포항-월포-장사-강구-영덕-영해-고래불-후포-평해-기성-매화-울진-죽변-흥부-옥원-임원-근덕-삼척. ITX-마음을 이용하면 54분 만에 이동이 가능하다.
울진 북면에 있는 흥부역에서 포항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흥부역은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이지만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2022년 울진 산불이 휩쓸고 간 황폐한 산들이 객차 안에서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동해중부선을 타면 동해의 수평선을 눈앞으로 바짝 당겨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럴 때는 아무 데서나 내리면 된다. 한국철도 역사 130년만에 첫 기차가 운행됐다는 울진에서는 울진관광택시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4시간에 8만원을 내야 하는 택시는 울진군에서 요금의 60%를 지원하는 덕분에 3만2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 예약이 필수다. 그리고 울진의 모든 군내버스는 무료로 운행한다.
죽변은 경북의 최북단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죽변항을 자주 찾는 편이다. 외진 곳이지만 볼 게 많다. 죽변등대 아래 시누대 숲속으로 난 조붓한 길을 걸어 등대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비로소 탁 트인 동해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을 타보는 것과 국립해양과학관에 가서 바닷속 7m까지 내려가 보는 것도 꼬소롬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해마다 가을에 연어가 올라오는 울진 왕피천 가에 민물고기생태체험관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이곳에 가는 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정리 향나무와 수산리 굴참나무를 놓친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한다면 울진이나 영덕은 교통의 오지였다. 수도권이나 부산, 대구에 사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참으로 어려웠던 곳. 동해중부선이 놓임으로써 7번 국도에 의지하던 동해의 해변 길이 온전하게 이어졌다. 앞으로 KTX가 개통된다면 더 빠르게 동해안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울진과 영덕은 국내 최고의 겨울철 대게 집산지다. 어느 지역이 더 많이 잡는지 나는 알 바 없다. 겨울에 대게를 먹으러 간다면 송수권 시인의 '겨울 강구항'을 검색해 보고 가라. "상한 발목에 고통이 비듬처럼 쌓인다/ 키토산으로 저무는 십이월/ (중략)/ 강구항에 눈이 설친다/ 게발을 때릴수록 밤이 깊고/ 12월의 막소금 같은 눈발이/ 포장마차의 국솥에서도 간을 친다" 고래불역에서 내려 축산항까지 영덕 블루로드길을 버스나 택시로 둘러보는 코스는 동해를 조망하기 딱 좋다. 영덕에서도 관광택시 '타보게'를 운영한다. 요금은 울진과 동일하다.
장날을 택해 영해 만세시장을 가게 된다면 좌판에 썰어놓은 오징어나 참가자미회를 2만원어치만 사서 해변으로 가서 한잔 마시자. 소주 두어 병이면 서너 명이 불쾌해질 것이다. 축산항은 근래 들어 물가자미정식 메뉴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미주구리라고 부르는 물가자미 회무침과 구이와 찌개를 한 상 가득 차려주는 식당이 여럿이다.
철길은 역시 힘이 세다. 최근 안동이나 영주 같은 경북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부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해졌다. 경주와 태화강을 거치는 KTX 열차가 부전역까지 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끊어진 동해북부선이 남과 북을 잇는다면 시베리아횡단 열차로 러시아와 유럽까지 가는 일도 멀지 않을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이 있어야 꿈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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