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716022503259

영남일보TV

“강수정이 누꼬 외침에…그림과 씨름하던 대학 2년생의 꿈 바뀌었죠”

2025-07-16 08:41

■대구 출신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당시 전국적인 명성 미대 학과장
학회지 기고 읽은 후 직접 찾아와
화가의 길서 이론가의 길로 선회

2023년 기획 美 구겐하임 전시회
한국 전위미술 양상 세계가 확인
큐레이터로서 성장한 계기이기도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이 대구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이 대구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을 개최했다.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미국 사회에 첫 소개한 이 전시회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주요 매체들이 집중 보도 했을 만큼 북미 사회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콘텐츠가 가진 풍성한 층위를 널리 북미에까지 알린 이 전시회의 기획자는 대구 출신으로 큐레이터 경력 30년차를 앞둔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이다.


◇화가의 꿈을 품고 미대 진학


어렸을 적 꿈은 화가였다. 자연스럽게 영남대 미대에 진학했다. 캠퍼스 작업실에서 그림과 씨름하던 대학교 2학년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민족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전국적 명성을 떨치던 김윤수 학과장이 직접 강 팀장을 찾아왔다. "강수정이 누꼬?"라고 외친 교수님의 손에는 노동자, 빈곤층 등을 대상으로 작업한 독일 출신의 작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세계를 해석한 강 팀장의 학회지 기고문이 쥐어져 있었다.


"전데요"라며 쭈뼛쭈뼛 손을 든 강 팀장에게 교수님은 느닷없이 "자네는 대학원에 와서 이론 공부를 해보지 않겠나? 단 나한테 오기 전에 100권의 이론서를 읽고 와야 하네" 라며 기다란 독서목록을 건네주었다. 그날 속으로 "천만에요, 저는 이론이 아닌 작가의 길을 걸을 거에요"라며 반기를 들었지만, 몇 년후 김 교수와 대학원 지도교수와 학생으로 마주했다.


그가 대학생활을 한 1990년대 초반 영남대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의 교수진들이 모여 영남학맥의 한 축을 형성했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의장과 민족예술인총연합 공동의장을 지낸 김윤수, 그리고 진보잡지인 '창작과 비평'의 발행인을 지낸 염무웅 등이 대표적이다.


"김윤수, 유홍준 두분 교수님의 연구조교로 활동힌 것이 제겐 큰 영광이었어요. 덕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출판 전에 읽어볼 수 있었던 기억도 나요.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남달랐다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는 과정을 몸에 익도록 한 것이에요."


◇"전시회는 아이 키우는 과정 같아"


"저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아이 키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대중에게 내보이는 과정, 그 어느 하나도 대충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든요."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입사한 그가 그동안 선보인 전시회는 실로 다양하다. 시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여러 전시회가 있었는데, 이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었다면 '한국미술의 전개과정'이다.


"오래전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서양의 미술을 받아들이려니 한계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한국미술의 전개과정을 시기별로 공부하면서 그동안 책으로 이해했던 유럽과 북미의 미술사조들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뭐랄까. 이들이 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스토리가 다져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2023년 기획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그의 프로필에서 빠질 수 없는 전시다. 서울에서 성황리에 전시를 마친 것에 이어 지난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까지 외연을 확장했다. 대구출신 이강소, 정강자를 비롯해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29명의 80여 작품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아트리뷰, 오큘라 등 주요 매체들도 리뷰를 실어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부쩍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많은 분들이 구겐하임 전시회를 두고 한국 실험미술을 북미에 펼쳐놓은 성과를 얘기해요. 하지만 이건 전체적 맥락은 외면한 채 절반밖에 안 보시는 거에요. 세계 미술계는 한국 전위미술의 양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고, 우리는 전위 미술사의 맥락을 풍부하게 만들어준 의미가 있었죠."


구겐하임 전시회가 큐레이터 강수정과 한국 미술계가 보다 성숙하는 계기가 된 것 또한 부인못할 사실이다.


"구겐하임 전시가 개인적으로 성장의 기회가 된 것은 물론 미술사적으로 적잖은 성과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전시회를 계기로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고 할까요."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C 이갑철>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대구경북, 근현대미술 견인 요람

글로벌시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면

휴지기 딛고 재도약할 수 있을 것


◇대구경북 사람들 "학구적이고 정열적"


대구경북은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문인 묵객들이 거쳐간 예술도시였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인성, 서동진 등 천재예술가들이 탄생했으며, '강정 현대미술제' 등 한국 미술사의 중요 장면도 우리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대구경북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견인한 요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영남 사림의 중심으로 학구적 기운이 풍부했고요. 개인적으로 안동에 갈 때마다 병산서원에 가서 한참동안 멍 때리고 앉아 있어요. 서동진 선생님이 운영한 미술 교습소만 봐도 교육열이 굉장히 높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한때 융성했던 대구경북 미술이 지금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면 미술사적으로 긴 시간의 흐름에서 잠시 휴지기라고 보아도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강 팀장은 대구경북 미술이 과거의 화려한 영예를 되찾고 재도약 하기 위한 제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은 하나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보여져요. 오픈된 시장에서 유튜버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고 있어요. 작가들이 로컬에 안주하기 보다는 자신의 작업을 끊임없이 스토리텔링 하고, 역외로 내보내고, 전시하는 과정을 시도하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흐름을 선도할 수 있다면 분명 멋진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입사 30여년, 앞으로 큐레이터로 펼쳐갈 또다른 세상이 궁금해진다.


"가끔 언론 같은 곳에서 '스타 큐레이터' '스타 작가'를 이야기 하는데, 저는 그런 것들이 '신기루'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오랜 시간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해 이름이 알려진다면 좋겠지만 무슨 행정력이나 유명세를 통해서 스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빨리 진다는 얘기 아닐까요. 인문학 베이스로 긴 시간이 녹여진 자신만의 작업이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글로벌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로서 제 역할은 실력있는 작가님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이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글로벌 맥락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이미지

김은경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