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최근, 학부모가 학교에 무단 침입해 시험지를 훔쳤다는 충격적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 떠올랐다. 광주에서 해킹으로 문제를 빼내려고 했던 고등학생 사건도 생각났다. 대입 결과가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집단적 강박과 왜곡된 믿음이 낳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모의 욕심은 어느 곳에서나, 예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 특정 학원 프로그램을 소수에게만 공개하며 선민의식을 느낀다는 학부모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가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 기이한 풍경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신입 사원이 지방으로 발령 나자, 부모가 인사 부서에 항의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학생 지도를 힘들어하는 신규 교사의 부모가 교장을 찾아가 '아이들이 자녀인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결을 요구했다는 일화까지 들려온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다'라며 자녀의 인생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 실제로 2009년 교수 부부가 자녀 입시에 허위 자료를 제출하고 대리 시험 의혹까지 받았던 사건은, 이런 일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장래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그 구조적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부모는 그것을 사랑이라 믿지만, 아이에게는 독이 된다. 진심이지만 그 진심이 방향을 잃으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기도 한다.
입시에서도 그렇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소는 '자기 주도성'이다. 자기 주도성이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며, 실행하고, 결과를 돌아보는 삶을 주도하는 힘이다. 그런데 아이가 해야 할 공부 계획을 부모가 짜주고, 독서 활동이나 봉사 활동까지 부모가 대신 챙기는 '입시 코디네이터 부모'가 적지 않다. 결국 아이는 스스로 목표를 정할 줄도 모르고, 정하려 하지도 않으며, 깊이 고민하는 습관조차 기르지 못한다.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휘둘리는 존재가 된다.
반면, 올바른 자녀 교육의 길을 선택한 부모도 많다. 국내 모 그룹 회장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을 회사 물류센터에 현장직으로 배치했다. 지게차 기사, 제품 상하차, 운전기사로 3년 넘게 근무하게 하며, 아들이라는 사실도 숨기도록 지시했다. 그는 '고생하지 않고 경영자가 되는 건 말이 안 된다. 조직이 인정해야 진짜 리더다'라고 말했다. 그 자녀는 누구보다 조직의 고충을 이해하며 특권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는 리더로 성장했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성공의 기쁨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도전할 줄 모르고, 작은 좌절에도 쉽게 무너진다. 삶의 긴 시간으로 볼 때,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가 실패의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부모는 자녀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아이가 혼자 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그때 아이를 지탱해 줄 것은 부모의 도움이나 보호가 아닌, 스스로 이겨낸 기억과 경험일 것이다.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건, 부족함보다 부모의 과잉보호다. 진짜 사랑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직접 일으켜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설 수 있다고 격려하고, 지켜봐 주며,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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