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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복잡다단한 삶 선명하게 녹아든 9인 9색 이야기…소설집 ‘시간을 빌리는 사람’

2025-07-24 18:02

소설 동인으로 20여 년 함께한
9명의 작가 미니픽션 33편 묶어
읽다 보면 삶의 의미 곱씹게 돼

시간을 빌리는 사람/구자명 외 8인 지음/나무와숲/296쪽/1만5천원

시간을 빌리는 사람/구자명 외 8인 지음/나무와숲/296쪽/1만5천원

20여 년 전부터 뜻을 함께해 온 소설 동인들이 소설집을 펴냈다. 서른 세 편의 미니픽션을 한데 엮은 '시간을 빌리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고집해온 단편소설에서 탈피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짧은 소설들로 꾸몄다. 짧지만 선명한 이야기들이 담긴 이번 책은 각기 다른 소재와 문체, 시선으로 삶의 단면을 포착한다. 구자명, 김의규, 김저운, 김혁, 배명희, 송언, 정의연, 최서윤, 한상준 소설가가 썼다.


표제작 '시간을 빌리는 사람'(배명희)은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정체불명의 남자를 보게 된 주인공이 시간을 빌려주는 사람과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그린다. 자신을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와 달리 그와의 시간이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마음의 평화마저 돈으로 사야 하는 시대, 관계의 실종 문제를 담아낸다.


소설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의 표제작은 주인공이 자신을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집 '시간을 빌리는 사람'의 표제작은 주인공이 자신을 '시간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비루와 남루 사이'(구자명)는 돈을 갚기로 한 약속을 어기는 대학 선배의 한없이 누추해져 버린 모습과 비정한 사채업자처럼 돼버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본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준다. 이를 본 주인공은 '비루와 남루 사이…우리 각자의 삶은 어디쯤입니까'라고 묻는다. 삶의 어두운 구석을 집요하게 응시하면서도 특유의 압축된 언어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화가이자 미니픽션 및 철학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시인으로도 등단한 김의규 작가의 작품 네 편 중 두 편의 주인공은 동물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다. '나'는 바퀴벌레, '사랑농장'은 개다. '나'는 말한다. "이제 출현한 지 10만 년밖에 안 된 인간과 3억5천만 년 된 우리 사이에 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감히 알겠는가? 해충이라고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엔의 그네'(김저운)는 다문화 교육 강사의 눈으로 본 이주 여성의 생존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다문화 가정 교육에도 잘 참여하지 않고 대화를 해보려 해도 틈을 주지 않는 이주 여성 '엔'을 보며 속으로 은근히 무시한다. '왜 저들은 저토록 무기력하고 무덤덤할까?'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러다 가난과 사회적 냉대, 그리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스스로 무뎌지는 연습을 수없이 해왔음을 깨닫는다.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김혁)는 민주화 운동권 출신 인물이 권력의 중심에 선 뒤 마약 탐지견의 수색에 걸리는 과정을,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송언)는 학력과 직업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현실을 위트있게 다룬다.


이밖에도 삶의 벼랑 끝에 선 주인공이 낯선 커플을 만나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그린 '고수'(정의연),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추억의 바다를 찾아가는 친구들의 여행 이야기 '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최서윤), 5·18의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에 난입한 군인들을 보고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이야기 '바다를 품다'(한상준) 등의 작품이 담겼다.


이처럼 각기 다른 소재와 빛깔의 작품들이 실린 '시간을 빌리는 사람'은 길이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우리의 복잡다단한 삶이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들을 읽다 보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곱씹게 될 것이다. 아홉 명의 작가가 꽃피운 저마다 다른 빛깔의 '바람장미' 서른세 송이의 향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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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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