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어제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정치는 '윤(尹) 어게인'이 아니라, 보수가 다시 당당하고 자랑스러워지도록 바로 세우는 '보수 어게인'"이라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의 주장과 기대는 실현되기 쉽잖아 보인다. 국민의힘 8·22 전당대회는 아무리 봐도 '윤어게인' 선포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혁신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그저께 의원총회는 성과 없이 끝났고, 오히려 전한길·김문수·장동혁 등 친윤 인사들이 당 대표 선거에 대거 나섰다. "지금 국민이 국민의힘에 바라는 눈높이는 정당 문을 닫으라는 거다. 과거와 정말 단절하겠다, 이것을 국민께 인정받지 않으면 나머지 모든 활동이 얼마나 국민께 가닿을까 회의적"이란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한탄은 메아리 없이 공허했다. 오히려 '전한길 입당'을 놓고 당과 당권주자들이 갈라져 이전투구를 벌이는 소리만 요란했다. 제1야당의 한심한 행태다. "추종자 약 10만 명이 이미 입당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을 당 대표로 만들겠다"는 전한길씨의 엄포는 실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되면 새 지도부를 뽑은들 국민이 돌아보기나 하겠는가.
국민의힘이 '윤어게인'에서 '보수 어게인'으로 선회하기 위해서는 극우세력과의 단절이 우선이다. 한 전 대표가 "우리 당을 진짜 보수의 정신으로부터 이탈시켜 극우로 포획하려는 세력들과는 단호히 싸우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부정선거론' '윤어게인' '전광훈 추종세력'은 마땅히 절연할 3대 극우세력이다. '보수 어게인'은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가치 안으로 돌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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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에 미국산 사과·소고기까지, 두 번 우는 경북 농민들
25일부터 진행되는 한·미 통상협상에서 사과 등 농산물 시장 개방이 협상 카드로 부상하자 경북 사과 농가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경북 사과 농가는 지난 3월 안동·청송 등 5개 시·군을 할퀴고 간 초대형 산불의 피해 복구도 마치지 못한 상황이다. 산불에 이어 냉해, 여름철 폭염까지 겹쳤다. 힘든 시기인데 미국산 사과 수입이란 복병까지 만났다.
경북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62%를 차지하는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다. 안동·청송을 중심으로 1만8천여 농가가 1만9천㏊에서 사과를 재배한다. 지난봄 산불로 이들 지역의 사과 재배지 1천560㏊에서 피해를 입었다. 3월 말∼4월 초엔 과수 꽃이 피는 시기의 이상저온, 5월엔 우박 피해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자식 키우듯 정성 들여왔기에 포기하지 않고 과원을 지키고 있다.
이만이 아니다. 정부는 미국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소고기 시장 확대는 이번 협상에서 꺼내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농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우도 경북지역이 전국 사육 규모의 20% 가량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농축산물 수입이 현실화되면 사과·소고기 주산지인 경북 농가가 직격탄을 맞을게 불 보듯 뻔하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보듯, 미국이 농축산물 수입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면 우리 정부가 이를 100% 거절하긴 쉽지 않다.
정부의 미국산 사과 수입 움직임에 농민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경북도의회, 안동시·문경시·청송군의회는 미국산 사과 수입 검토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산불로 인한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과 수입문제까지 터지니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겠는가. 정부는 농민들의 절규를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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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총리 'APEC 촉박' 냉정한 진단…그래도 성공시켜야
김민석 국무총리가 그저께 서울청사에서 'APEC 준비 상황'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준비 대차대조표는 부실하고, 시간은 촉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성공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APEC 준비 현황에 대해 실로 정곡을 찌른 말이다. 행사가 9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섣부른 낙관론을 강조하기 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발 빠른 대책을 내놓는 게 정부의 할 일이다. 현재 시설 공정률을 보면 회의장 40%, 미디어센터 60%, 만찬장은 35%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내부시설 설치나 프로그램 리허설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APEC 행사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초입에서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세계 무대에 복귀했음을 알릴 계기이며, '88서울올림픽 이상의 의미'를 지닌 행사라는 김 총리의 이날 평가는 지극히 타당하다. 대구·경북 차원에서도 '글로컬(Global+Local)'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때마침 대한상의는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기간에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포항과 구미, 경산 등지의 산업단지 시찰과 함께 투자 상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지역 경제에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부는 모든 준비 항목의 체크 리스트 점검을 이달 말까지 끝내야 한다. 핵심 시설이 마무리될 9월 이후에 문제점을 바로잡는 건 자칫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패착이 될 수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남은 기간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손님 맞이 준비를 한다면 'K-APEC'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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